스포츠와 정교분리, 또는 종교의 자유에 대해
스포츠와 정교분리, 또는 종교의 자유에 대해
  • 서현욱 기자
  • 승인 2016.09.12 17: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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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스포츠선수 종교행위 허용 시민토론회 토론문/이창익

스포츠와 정교분리, 또는 종교의 자유에 대해

이 창 익(고려대학교 연구교수)

▲ 이창익 연구교수ⓒ불교닷컴

최근 리우 올림픽에서 몇몇 운동 선수들이 경기 중에, 또는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개인의 종교적 신앙을 말이나 행동(기도)을 통해 표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도 양궁 개인전 금메달 직후에 이루어진 장혜진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서, 지나치듯 잠깐 ‘종교적 커밍아웃’의 문제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생방송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자는 국민들의 응원을 당부하고, 텔레비전 앞에서 국민들은 열심히 운동 선수의 선전을 가슴 졸이며 기원합니다. 운동 선수는 경기 내내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주문’을 외듯 뭔가를 중얼거립니다. 아나운서는 선수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나 격려의 말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응원과 기원 덕분인지, 선수 개인의 탁월한 역량 때문인지 염원하던 금메달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막 경기를 마친 운동 선수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며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예상과는 조금 다른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운동선수는 “우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경기 내내 “하나님”을 읊조리며 자신을 격려했다고 말합니다.

제가 굳이 이 장면을 부연 설명하는 이유는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운동 선수의 종교적 표출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사실 위의 장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신앙의 표출 이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국민적 배신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국민국가의 대항전이며, 해당 국가에서 해당 종목의 가장 특출한 선수를 선발하여 서로 경쟁을 시키고, 이를 통해 주기적으로(4년마다) 국가/국민이라는 경계선을 재생산하고 재형성합니다. 특히 올림픽 개막식은 국가의 전시장 역할을 합니다. 올림픽은 근대 국가의 탄생과 궤를 같이할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국가의 경계선을 가시화시키는 장치입니다. 특히 이번 올림픽은 국가 없는 사람들, 즉 지구의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난민만을 따로 모아 출전 자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실 올림픽 같은 경기는 인종, 종교, 성별 같은 국가 이외의 다른 경계선을 일시적으로 억누르는 장치입니다. 그러므로 올핌픽에서 운동 선수가 종교라는 이질적인 경계선을 표출했을 때, 그것도 종교라는 가장 강력한 정신적 경계선을 표출했을 때, 이 장면은 뒤틀린 경계선의 중첩을 발생시킵니다. 국가의 경계선 위에 종교의 경계선이 살포시 얹혀질 때, 이것은 마치 수술대 위에서 만난 재봉틀과 우산을 상기시킵니다. 이러한 상황의 논리적 귀결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 보려 합니다.

첫째, 국가의 경계선을 가지고 노는 놀이터에서 갑자기 종교라는 경계선이 펼쳐질 때 사람들은 당혹스러워 합니다. 경계선의 위반, 나아가 잠재적 규칙의 위반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솟아납니다. 한쪽에서는 정교분리를 이야기하면서,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태릉선수촌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상징적인 정치적 공간이며, 국가대표는 자신의 능력과 업적에 대해 국가로부터 보상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정교분리의 적용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저도 이러한 주장이 현재로서는 그나마 가장 건전한 해결책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교분리는 원래 정치에서 종교를 배제하기 위한 근대적 전략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교 분리의 목표는 종교 없는 공적 공간의 창출입니다. 이상적으로는 종교라는 가장 극명한, 가장 비타협적인 정신적 경계선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근대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원래 정교분리는 정치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정교분리 이야기는 주로 종교인의 입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제 정교분리는 정치로부터 종교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 즉 정치 없는 순수한 종교적 공간, 성스러운 공간을 보존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으로 변질된 것처럼 여겨집니다. 정교분리가 종교의 생존 전략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가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을 떠올리면, 모든 종교는 정교분리를 이야기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갖게 됩니다.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교분리의 문제(국가와 교회의 분리)는 탈종교화된 영역의 확보라는 문제에서 비롯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사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 있으며, 종교 역시 정치적 주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와 종교의 가상적인 경계선을 설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종교인을 정치적 공간에서 배제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정치와 종교의 경계선은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치적 인간이면서 동시에 종교적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소유권의 경계선을 설정하듯, 법률적 경계선으로 종교와 정치의 경계선을 그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교분리가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종교 기관, 사찰, 성당, 교회 같은 집합체뿐입니다. 기독교인, 불교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정치와 스포츠와 같은 공적 공간 안에 존재하는 종교인은 자주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편의상 공적 공간에서 종교적 신앙을 표출하거나, 공적 장치를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 이용하는 일을 억제하려 합니다. 종교 없는 공적 공간, 다시 말해서 배타적인 정신적 경계선이 없는 최소한의 공적 공간을 확보하려는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정교분리는 종교 없는 최소의 정치적 공간 확보 문제가 되고, 종교는 사적 영역으로 후퇴합니다. 그러나 다시 여기에서 종교 자유 내지 종교 포교의 자유라는 원리가 개입하며, 정교분리가 재해석, 또는 전복됩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공사의 구별이 그리 뚜렷한 세상이 아닙니다. 

둘째,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이야기할 정교분리의 두 번째 의미가 등장합니다. 공익과 공공성을 크게 해치지 않는 이상, 정치적 공간 안에서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 포교의 자유는 보장돼 있으며, 이를 위해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종교 없는 공적 공간은 무주공산이기 때문에, 역으로 종교가 좋아하는 먹잇감이 됩니다. 지금도 각 종교는 공적 공간을 쟁탈하고 분점하려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실 항상 기도로 골 세리모니를 대신하는 박주영 선수의 경우, 본인은 당연히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몇몇 기독교 신문은 ‘스포츠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박주영의 기도 세리모니를 극찬합니다. 타종교인이나 다른 국민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신앙을 표출하는 종교적 용기에 갈채를 보내는 것입니다. 스포츠 현장에서 종교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극단적으로 진행될 때, 오히려 스포츠 현장은 더 좋은 종교적 순교 현장이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리고 운동 선수가 국민의 기쁨을 위해 노력하여 골을 얻었으니, 그 정도의 개인적 종교 표출은 눈감아주어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도 많습니다. 크게 공익을 저해하지 않는 이상, 개인의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그러한 종교적 표현까지 억누른다면, 그것이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기도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종교 자유와 결합하면서 정교분리는 정치로부터 사적인 종교 공간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변형됩니다. 즉 아무리 공적 공간이라고 하더라도 사적인 종교적 양심의 분출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운동 선수나 감독의 종교적 커밍아웃은 자주 등장하는 논란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스포츠 경기에서 표출되는 종교적 언어나 행위에 대한 일관된 규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경기를 관람하는 관객의 종교적 감수성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이슬람 식 기도로 세리모니를 한 풋볼 선수가 제재를 받았던 사례처럼, 규제가 특정 종교인을 겨냥한 종교적 공격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치나 파시즘을 떠올리게 하는 경례 행위로 골 세리모니를 한 축구 선수가 반유대주의 혐의에 걸려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운동 선수의 종교적 표출은 보통 다른 문제와 연결되면서 논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논란의 중심에 있는 종교가 기독교이고, 따라서 기독교 식 세리모니가 국민적/종교적 감수성의 문제와 연결되면서 문제가 제기되기 쉬운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기독교가 현재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포지셔닝하고 있는가의 문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기독교가 좋은 종교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기독교에 대한 국민적 정서가 관용적이라면, 스포츠 선수의 골 세리모니가 이 정도로 논란의 중심에 서지는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현재 이러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특히 국가대표가 집합하는 태릉 선수촌 같은 경우, 운동 선수와 감독 등을 대상으로 하는 일정한 종교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그러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어떤지는 제가 확인하지 않아 잘 모릅니다. 적어도 현재의 문제에서는 법적, 제도적 강제나 규제보다는 교육이나 상식의 유통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선수와 감독이 국민과 관객의 종교 감수성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스스로 자신의 종교적 신앙 표출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아직까지 우리의 문제는 대화와 숙고를 통해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스포츠 현장에서 벌어지는 종교 강요의 문제, 종교 자유의 억압 문제 등이 공론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나 운동 단체에서 감독이나 제도가 특정한 종교적 신앙을 운동 선수에게 강요하는 문제가 여전히 수면 아래 잠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때 운동선수는 종교적 표현을 강요 당하는 피해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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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6-10-17 03: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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