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소장 "잘못된 세상 놔두고 왜 절만 고치나"
설조 스님 "한국불교, 힘 있는 자 비위맞추기 급급"
백기완 소장 "잘못된 세상 놔두고 왜 절만 고치나"
설조 스님 "한국불교, 힘 있는 자 비위맞추기 급급"
  • 이혜조 기자
  • 승인 2018.10.10 11:33
  •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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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두 어른 만남...청담 스님 꾸짖고, 법정 스님 재야인사된 뒷애기도
▲ 설조 스님이 지난달 29일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백기완 소장을 만났다. ⓒ이석만

시대의 두 어른이 만났다. 조계종 적폐청산을 위해 지난 여름 41일간 목숨건 단식을 한 설조 스님, 평생을 노동자 민중을 위해 불의한 권력에 저항해온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지난달 29일 처음 조우했다. 세간과 출세간에서 개혁의 최전선에 선 분들이다.

조계종 적폐청산을 위해 87세의 설조 스님이 단식 정진에 돌입하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스님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뜻을 보태고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백 소장은 진즉 단식 정진장에 들러 설조 스님을 만나고 싶어 했지만 고령에 심장질환으로 10시간의 대수술을 한 상태였고, 회복이 매우 더뎌 끝내 조계사 옆 단식정진장을 찾지는 못했다.

백 선생의 이런 애틋한 마음은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으로 부터 전해들은 설조 스님이 지난달 29일 서울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를 찾았다. 양 이사장은 백 선생을 모시고 있고, 지난해 <명진스님 제적철회를 위한 원로모임> 대변인을 맡았다.

백 선생은 선방에 앉아 민중의 삶을 외면하는 불교를 꾸짖으며 불교에 대한 두 가지 일화를 얘기했다.

일제강점기 때 찾아간 함경도 사찰에 '대동아 전쟁 승리 만세'라고 써붙였는데 같은 절을 8.15해방후 찾았더니 '조선독립 만세'라고 180도 달라진 글귀를 대문짝만하게 내건 사실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고 회상했다.

또 하나는 박정희 시절 남한 도선사에서 청담 스님을 만나 대규모 불사하는 모습을 보고 "잘못된 세상을 고쳐야지, 왜 절집만 고치고 있냐"고 일갈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백 소장은 법정 스님은 초야에서 재야인사로 등장시킨 배경도 처음 밝혔다. 

설조 스님은 건강을 회복해 백기완 선생 같은 분이 후학들을 이끌어 달라면서 "나는 10.27 법난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갔던 사람이며, 요즘 우리교단은 힘 있는 사람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고 있다."고 자조했다. 스님은 "부처님은 어려운 사람 편에 섰는데, 못난 제자들은 따르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이어 "예전 독재가 심할 때 선생님이나 함석헌, 장준하 선생님, 문익환 목사님 이런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오히려 요새는 편안한 시기인데도 바른말 해서 맞고 유치장 갈 일도 없는데도 그런 분들의 수가 적어 기가 막히다"고 했다.

다음은 설조 스님와 백기완 소장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설조 스님 ⓒ이석만

백기완 소장 : 그동안 고생하시는데 제가 먼저 찾아뵈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설조 스님 : 제가 그 전에 뵈었어야 하는데, 겨레사랑으로 평생을 고초를 겪으신 분들 찾아뵙지도 못하고 제가 죄송할 따름입니다. 교단이 보탬이 되어드려야 되는데 오히려 짐만 되어 드려 죄송스럽습니다. 선생님이 건강하셔서 우리 겨레가 정신을 차려 서로 아끼고 보듬어 통일을 준비하도록 해야 할텐데, 선생님이 건강하셔야 합니다.

백기완 : 이 땅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불교라는 게 체제 안에서 자리잡고 불교정신을 생각하면서 살아온 역사가 일관되게 있습니다. 조선왕조 때는 서산대사 같은 큰 스님도 계셨지만, 그 전에는 불교를 자기 몸을 가꾸는데 늘 같이하고 있을 뿐 불교를 사람사는 세상을 가꾸는 데 이바지시킨다는 생각을 하긴 해도 조금밖에 안했다는 것 같아요. 그런 역사가 있거든요. 그런 가운데 우리 (설조)스님 같은 분이 계시니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설조 : 선생님 말씀대로 옛날에는 임금이 주인인 시절이어서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 지금은 백성이 주인인 시대에도 우리 스님네들이 정신을 못차리고 백성이 귀한 줄 모르고 그저 힘 있는 사람 비위 맞추기에 급급해가지고 오늘날 같이 우리교단이 쇠락한 원인이 됐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도산 선생의 청년시절을 더듬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도산 선생은 참 훌륭하셨어요. 청년 도산은 기독교 신자인데도 기독교도 겨레를 바르게 복되게 하는 종교지, 종교 우선의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겨레를 우선하고... 저는 늙어서도 그게 부럽습니다

청년 도산은 30(세) 안팎에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저는 늙어가면서도 겨레가 우선이라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요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어려운 시기에 휴전선 이북은 고사하고라도 이남이 얼마나 갈등이 심합니까? 종교적인, 있는 사람 없는 사람간, 지역적인 갈등... 이런 갈등이 심한 상황에 도산 선생이 뜻을 선양한 것이 이 시대의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해야될 일이 아닌가? 길이 본받아서 행하면 휴전선 이남 사람들이 마음이 열리고, 그 열린 마음으로 복한 동포들도 수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저는 우리교단이 힘 있는 사람 비위맞추기에 급급하다 이 지경됐는데 우리교단이 제자리를 챙기고 나아가 겨레가 바로 나아가는 데 뒷받침이라도 해야되지 않는가! 선생님이 건강회복하셔서 겨레가 나아갈 길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채원희

백기완 : 제가 겪은 절집안 얘기를 한두가지 하고 싶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입니다. 일제말엽이죠. 선생님을 따라서 소풍을 갔는 데 황해도 구월산 패엽사였습니다. 기둥에 "대동아전쟁 승리만세. 미영(미국과 영국)을 격멸하자"라는 구호가 붙어 있었는데, 초등학생이 뭘 압니까? 그저 전쟁을 이기는 것도 절집에서 바라는 가보다. 1년쯤 뒤 8. 15 해방됐을 때 또 패엽사를 소풍갔어요. 

물이 아무리 요란하게 흘러도 잠이 드는데 방해가 안 돼. 자장가소러처럼 들려요. 자연의 소리니까. 폭탄소리 총소리 이런 거는 잠을 못 자게 하지만 물 흐르는 소리는 사람을 괴롭히지 않아. 패엽사 앞에 물이 좔좔 흐르는데, 그 소리가 좋아서 드러누워 있다 절구경을 하다 봤어. '대동아전쟁 승리 만세'라는 구호는 없어지고 '미영을 격멸하자'는 구호도 없어지고 거기다가 '농민만세 해방만세'라고 써붙였어. 1년새에 절집 구호가 바껴서 스님에게 물어봤어. "스님 어떻게 된겁니까?" 하니 대답을 안 하셔. 우리 어릴때도 좀 짓굿은 생각이 있어서 따라가면서 계속 물었죠. 절집은 그대로인데 절집에 붙은 구호는 달라졌으니 왠일이냐고. 말도 안하고 뱅글뱅글 돌아요. 우리도 뱅글뱅글 돌다가 대답을 못듣고 말았는데, 스님에게 이런 말씀드리면 좀 언짢아 하실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얘기합니다.

설조 : 아닙니다.

백기완 : 아 내 생각이 조선왕조 때도 절집이 지켜지고 고려왕조때도 절집이 지켜지고 외정 때도 절집은 지켜지고 8.15해방 직후에도 간판은 달라져도 절집은 지켜지더라 이말이예요. 종교라는 것이 체재 내에 안주하는 자기본질이 있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내가 좀 무겁게 나갑니다만 경험해보니 그렇더란 말입니다.

세월은 흘러서 내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오고 젊은 나이가 되고 장준하 선생님하고 도선사 산길을 가는 데 앞에 스님네들이 와. 우리는 도시락도 못싸고 절 뒤를 가는데 절을 고친다고 난리야. 마침 잘 차려입은 스님이 햇빛에 허리띠가 번쩍거려. 스님이 이 어려운 때 왜 허리띠를 번쩍거리면서 가나 했는데 장준하 선생하고 그 스님하고 인사를 하더라고. 반갑다고.

제가 그랬죠. '지금 때가 어느 땐데 도선사를 저렇게 짓고 고치고 하는가 말이야. 잘못된 세상을 고칠 생각을 해야지. 내가 절집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겉으로 보기엔 마음이 거슬립니다.' 라고 했더니 그 스님이 가만히 있다가 '절집은 어느 한 시대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긴 흐름을 생각한다' 그거야 . '절집이 좀 낡고 그러면 고치기도 하고 또 신도들이 많이 오면 넓히기도 하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그래

그 때 내가 한창 젊을 땐데 60년대 초에요. 다시 돌아가서 "스님,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는 데 스님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절집부터 고칩니까." 그랬더니 스님이"생각이 좀 짧구만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역사는 길다. 마음에 안드는 세상은 조금만 참고 견디면 또 흘러가고 절집은 영원히 살아서 부처님 말씀을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니냐"
"부처님하고 우리 같은 사람은 거리가 있네요. 부처님은 우리 속에 있고 우리 삶 속에 있어야 진짜 부처님이지, 그 필요 없는 부처 아니겠습니까?"
"젊은이는 말에 갈퀴가 들어 있어. 갈퀴로 긁어"

그 때는 내가 박정희 땐데요. 박정희에게도 이놈 저놈하면서 뻑하면 끌려가서 매맞고 나온 나덴, 그 말이 언짢아서 ....

"절집이 잘못된 세상에 저렇게 큰 기와집만 유지하려면 안됩니다" 그러고 헤어졌어.
그랬더니 장준하 선생이 그 성질에 스님 멱다시(멱살을 속되게 이르는 말) 안 잡아서 고맙다고, 내 성질이 젊었을 때는 멱다시 잡고 그랬거든요.

내가 절집을 두번 경험했어. 왜정 때 절집 '대동아 전쟁 승리 만세' 써붙였던 절집, 8.15해방후 금방 '조선독립 만세' 써 붙였던 절집. 그리고 도선사. 박정희 같은 못된 놈이 있는데 집만 고치고 그걸 옹호하더라고... 전 조금 스님들을 그렇게 믿질 않았어요. 그 때부터.

아이 스님 죄송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나, 장준하 선생, 계훈제 선생, 함석헌 선생이 모여 사상계라는 잡지사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박정희 반대 성명서를 내려는 데 기독교 대표는 몇사람 있다 이거야, 그런데 절집의 대표가 몇사람 없다고 그래. 스님들이 나서줬으면 좋겠는데 걱정들 해. 난 절집 사정을 잘 모르고 안다는 사람은 별로 없고... 법정이라고 하는 젊은 스님이 이따금 글을 쓰는 걸 보면 섬세하고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는 글을 써.
그래서 절집에도 법정이라는 젊은 스님이 있더라 . 그 사람 교섭을 해보면 어떠냐

아 그래요. 어느 절에 있냐고. 난 그건 모른다. 글만 보고 안다. 그래서 법정이가 재야의 인사로 신문에 오르내릴 수 있었던 게 그때 그 회의하던 분위기야. 나도 그랬지.

그 뒤로 고은에게 법정이를 아느냐냐고 했더니 법정을 잘 안대. 건데 글을 쓰는 건 좋은데 글이 좀 간지러워 갈퀴를 좀 벅벅 긁어줘야지. 그래 법정이 만나면 그 얘기를 좀 해달라 그랬더니,

그렇잖아도 나하고 고은이 하고 잡혀가서 나는 매를 직싸리 맞고 고은이는 중출신이라고 매를 안맞고 나왔어. 나와서 어디가서 며칠 쉬자고 고은이가 송광사라는 절이 있대 . 거기를 갔어 법정이도 있다고 해서.

고은은 법정이 있다는 데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별로 마음에 안든다 그런 뜻인것 같아. 한참 있더니 밥들 먹는 데 공양이라고 해. 공양은 한문 표기 아니냐. 절집에서 몽땅 송광사 도선사 패엽사 성불사 절집 이름이 우리말로 된 데가 하나도 없어. 절집 사람들이 보살 보살 그러고 민중을 싫어하지 않는데도 왜 중국말을 그렇게 좋아햐냐 이말이야. 난 그게 좀 못마땅했어.

암튼 송광사 갔더니 나보고 열을 서서 밥을 얻어 먹으래. 고은이도 열을 서고... 네가 절에 와서 밥을 굶는 게 낮지. 열을 서서 밥을 얻어 먹기는 싫더라고요. 갖다 주는 것도 싫고. 에이 우라질. 나는 내려가서 막걸리 한 잔 먹고 오는 게 낫지, 내 이것 못 먹겠다 이랬더니 고은이가 밥을 가져왔어. 고기 아니고 시래기국인데 멸치도 안넣은 멀탕국인데 뭘. 한그릇 얻어 먹었더니 스님이 내려왔다고 그래. 그게 법정이야.

송광사 조그만 선방에 있다는 게야. 내가 감옥에서 매를 맞고 거의 죽어갈 때야. 내방에는 광신적인 기독교 순복음교회에서 나오는 기독교 신문하고 법정 스님의 수필집하고 두 개가 왔어. 나는 매를 직싸리 맞고 내려갔으니 막걸리라고 한 잔 대접하는 게 스님이 스님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을 했어. 내가 짧고 절집안 분위기 모르니까. 법정이가 차 한 잔 밖에 안 줘.

감옥 안에서 죽게 됐을 때 법정 스님 수필집을 본 기억이 떠올라. 장준하 선생이랑 재야인사로서 법정 스님을 내가 추천하던 생각은 안하고 개인적으론 그 때 법정을 몰랐고, 그 바람에 법정이가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졌거든.

▲ 백기완 소장 ⓒ채원희

무슨 수필을 봤냐고 묻길래 법정 스님이 산골 선방 부엌에서 토끼가 눈을 피해 들어와 떨고 있어서 선방 문을 열어 줬더니 방에 들어와 웃목에 있더라는 거야. 같이 자고 날이 밝아 방문을 열어주니 나가더라는 거야. 인간적인 수필이야

초등학교 1학년 때. 마을 애들이 토끼 사냥 가자는 거야. 눈도 오고, 부지깽이 하나들고.... 새벽에 갔는데 저녁 늦게까지 토끼는 보지 못했어. 토끼 잡으면 내가 산채로 뜯어 먹어야 겠다. 배가 고프니까. 이게 사림이여. 토끼도 짐승이니까 아껴야되겠다는 것은 머리와 가슴이고, 위장의 생각은 달라. 그걸 나쁘게 보면 안돼. 좋게 볼 것도 없어. 남의 생명을 죽이는 것을 좋다고 볼 순 없지 않습니까.

어렸을 때 왜놈들이 쌀을 다 뺐어 가서 쌀밥은 하나도 못 먹고 보리밥아니면 노란 조밥은 조금 먹는데 그것도 없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마솥에 콩국 한사발하고 강냉이 요즘말로 옥수수 하나가 내 저녁이야. 어렸을 때 그것먹고 저녁이 됩니까? 배는 고프고 토끼 사냥가서 못잡고 그저 씹어먹어야 겠다는 생각밖에 없어. 인격적이고 도사적인 생각을 하면 그것도 거짓된 말이 아니겠냐.

그런데 법정이가 그런 글을 써서 잘 팔린데.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고 나에게는 와닿지 않아. 산사에 있으면 반찬은 없지만 밥은 한그릇 먹고 그것 밖에 모르는 사람은 진짜 질풍노도의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는 것 아니냐... 모릅니다. 배때기가 부르니까 알게 뭐여. 가만 앉아서 이런 옷입고 불경 좀 외우면 다 좋게 생각하고 밥은 주니까.

법정 만났을 때도 그 얘기를 할려다 남의 집에서 ... 법정 내려왔다고 다른 스님들이 난리야. 고은이 절집이라는 게 위선자 집단 아니냐 그랬어. 그런 면도 있죠. 내 얘기는 절집을 지키면 안돼. 

요 얘기만 말씀드릴게요. 내가 초등학교 때 봄날 절집에 가면 밥을 얻어 먹는다고 그래. 절에 가니 스님이 안 계셔. 밥이 없잖아요. 뒷절이야. 남쪽에 가보니 한글로 된 절이름은 뒷절 밖에 없어. 어린 마음에 밥 한그릇 주기를 바라고 앉아 있는데 얼굴이 빨간 아저씨가 오셨어. 이름이 '절중부은'이야.

"절집에 오면 밥준다는 데 왜 아무도 없어요?"
"절집엔 아무도 없어야 돼!"
"왜요?"
"요 산을 넘고 또 넘으면 진짜 절이 있어"
그 무슨 소리냐. 담벼락이 없는 절이 있다 이거야. 바람이 막 칠거 아니야. 담벼락만 없을 뿐 아니라 지붕이 없어. 비나 눈을 맞을 것 아니야. 구들장이 없어.  그런 뒷절이 있다 이거야. 이 것만 뒷절이 아니고 진짜 뒷절은 그런 거다 이거야.

기와집 지워놓고 떡 선방에 앉아서 배는 안 고프고 백번 선을 해봐라 이거야. 있는 놈 없는 놈이 죽을라고 갈등하는 것을 모른다 이거야. 그 아저씨 얘기야. 밥을 해야 할 쌀도 없고 머슴을 산다 이거야. 밥은 거기서 얻어 먹고 잠은 여기서 거적때기 하나 덮고 잔다. 난 그가 고승인 줄 몰랐어. 그 황해도 산골짜기에 그런 스님이 계셨어. '절중부은'이라는 아저씨가.

절이라는 데가 절집은 장마에 떠내려간 적이 없어. 풍수지리를 잘 알아갖고 암만 비가와도 비는 옆으로 빠지게 그런 데다만 꼭 절을 지어. 내려다보기 좋고 전부 굽어 보는 자리에만 있어. 대형절이라는 데가 전부 그런 데 있어. 이거 안된다 그거야.

절집에 와서 밥을 얻어먹고 가면 안 된다 그거야. 부처님의 좋은 말씀 누가 해주면 되고, 안 해주면 바람소리 물결소리 별빛에 전부 부처님 말씀이 있다 이거야. 너희들 여기와서 밥 못 얻어 먹었다고 울지 말고 고개들면 별이 있지, 바람이 불지, 냇물 흐르는 소리 들리지, 여기서 부처님 말씀을 들으라. 부처님 말씀이 똑 같애. 그 사람아 무슨 공부만 한 사람도 아니고 인격자도 아니고 이름이 절중부은이야.

나는 우리 명진이 하고 친한데 명진이 보고는 꼭 깡패 스님이라고 해. 내가 그러면 화를 안내요. 좋아하지. 중이 전두환이 까불 때 욕하다가 감옥갔잖아.

생각이 좀 있는 분들이 절집의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애를 쓰는데 다 고맙죠. 그러나 절집의 역사도 좀 바꿔야 돼. 꼭 권력가하고 임금하고 임금의 딸하고 그런 얘기가 많잖아. 임금이라는 놈이 얼마나 나쁜 놈이요. 조선왕조 때만 보더라도 그 옷을 입고는 똥간 가기도 힘들 잖아요. 임금은 이런 것도 들어선 안돼 들어줘야 먹어야지. 앉아서 불경만 외는 이런 절집이 썩어 문드러졌다 나는 생각해요. 우리 명진이보고 뒤집어 엎어라 말이야. 알겠습니다. 선생님

고생 많이 하시고 수행 생활하시는 스님 앞에서 초라한, 중생도 못 되는 사람이 절집 얘기 함부로 해서 죄송합니다.

▲ 설조 스님 ⓒ채원희

설조 : 조선시대 스님네들은 백성 곁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의지할 곳이 스님네들 뿐이었어요. 벼슬아치나 양반들은 착취를 해. 스님네들은 그 사람들의 벗이 됐었죠. 오백년 동안 견딘 것이 백성들하고 같이 있었기 때문에 견딘 겁니다. 홍길동, 장길산, 임꺽정이나 불쌍한 사람들이 다 스님들과 가까이 지냈어요. 오히려 그 때 스님네들이 백성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달랬죠.

부처님은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섰습니다. 계급제도를 타파하시고, 착하고 악하고는 행동이지 핏줄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왕족이나 귀족도 나쁜 짓하면 나쁜 놈이고 천한 사람도 마음을 바르게 쓰고 행동을 바르게 하면 착한 사람이다. 핏줄로 귀천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못난 제자들은 그런 걸 제대로 따르지 않죠.

저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전두환 때 우리교단에 10.17법난이 났는데 저는 그날 밤 비행기 타고 미국 도망갔습니다. 그 죄가... 집에 불이나면 나갔던 사람도 들어와야 하는데 저는 그 난리나던 날 도망을 가서 미국에 살면서 그게 계속 짐이 됐습니다. 저는 원죄가 큰 나쁜 중입니다. 속죄하는 심정으로 전두환 욕하는 모임에 참석하고 단식도 같이 하고 영사관에 가서 데모도 했는데 마침 한국에서 스님이 한 분도 찾아왔습니다. 

목사가 스님에게 "이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자 그 스님이 "기도해야죠"라고 하자 옆에 있던 어린 목사가 "스님 말씀맞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도해야 합니다"라고 했어요. 함경도 출신의 염천석 목사가 그 목사에게 "나와 자식아. 니가 목사야. 니 마누라를 목전에서 강간하고 불한당들이 네 딸을 강간할 때 너 그 때도 거기서 기도하겠냐. 이 나쁜 새끼. 전두환에게 당하는 사람들이 당할만한 짓을 한 줄 아느냐. 그 사람들이 (얼마나)억울한 줄 아느냐. 젊은 사람들이 매맞고 부녀자들이 강간당하고 그런데도 기도를 해?" 그때가 부천성고문 사건 났을 때입니다. 그 말은 바로 그 스님에게 하는 욕입니다.

성직자들이 불쌍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대신 매맞을려고 해야 하는데, 저는 한국에 있는 스님들보다 더 염치가 없죠. 도망나왔으니까. 그런 와중에 도산 선생의 행적을 더듬게 됐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도산 선생의 뜻을 살려서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보듬어 주는 그런 분위기가 조성돼야 되겠다. (백기완)선생님 말씀대로 그 것을 앞장서서 해줄 사람들이 성직자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은 저같이 제 일신만 생각하는 중들이나 성직자들을 잘 나무라셔 가지고 겨레사랑을 앞장서 더 잘하라고 일러주십시오.

예전의 독재가 굉장히 심할 때 선생님이나 함석헌 선생님이나 장준하 선생님, 문익환 목사님이나 이런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으셨는데, 오히려 요새는 편안한 시긴데도 바른말 해서 빰맞고 유치장 갈 일도 없는데도 그런 분들의 수가 적습니다. 그게 기가 막힌 일입니다. 이런 때 앞장선 분, 머리가 깨어 있는 분, 노숙한 분들이 겨레사랑을 외치고 그래야 할텐데 저는 부끄럽죠. 그런 걸 희망하고 감히 못하니깐. 선생님은 그동안 어려운 삶을 잘 견뎌오셨습니다. 

백기완 : 저야 뭐 아무에게나 짓밟히는 막풀처럼 살았죠. 잡초라는 말이 있는데 생명력이 강하죠. 우리말로 막풀, 못된 풀이 아니라 어떤 비바람 눈보라도 이기고서 자기 목숨을 지켜내는 풀을 말합니다.

설조 : 다행스럽게도 어려운 시기에 선생님이나 함석헌, 문익환, 장준하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계셨습니다. 그 선대에는 도산 선생이나 김구 선생, 만해 스님 이런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 암울한 시기에도 일신의 어려움을 무릎쓰고 다 하실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건강 잘 유지하시면서 채찍질 해주셔야 합니다.

백기완 : 저야 뭐 그냥 뭐 바람이 부는 대로 건들건들거리며 살아왔는데 뭐. 계속 머무르면 체하지. 잘되고 안된다는 걸 머리에다 그리면 안되고 죽으라고 몸부림친다는 생각만 하면 돼.

▲ 얘기를 나누다 활짝 웃고 있는 설조 스님과 백기완 소장. ⓒ채원희

설조 :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해야 될 일 해야죠. 일전에 김종철 이사장(자유언론실천재단), 함세웅 신부, 다른 기독교 원로목사님 오셔서 불교 교단도 걱정하시고, 불교교단이 앞장서 적폐청산이 잘되면 여타종교단체나 사회전반에 좋은 파장을 일으킬 것입니다. 꼭 성취하십시오. 김종철 이사장님이 저를 북돋우시고 때론 채찍질도 하십니다. 앞으로 스님은 교단 정화도 하지만 사회 정화에도 앞장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씀을 하셔서 제가 며칠 안 있으면 천막에서 사무실로 옮깁니다. 옮기는 집이름을 그렇게 지을까합니다. 맑고 바르게, 한문으로 맑을 정(淨)자, 바를 정(正)자 정정법회라고 교단을 맑게 사회를 바르게라고 짓습니다.

김종철 이사장님은 꼭 불교교단에만 국한하지말고 민족사랑이나 이런 데도 불교 몫을 해야 됩니다.... 저를 굉장히 압박하고 계시죠. 저는 그 것이 제가 받아야할 채찍이라고 생각하고,

근간 박정희 이후 사회에 기여한 도를 봐서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나 민주적 의식이 있는 목사들이나 그 분들이 헌신 것에 비해서 우리 스님네들은 선생님이 지적하셨듯이 법정 스님이 그나마 다입니다. 그 후 전두환 때 명진 스님이 지선, 진관 스님이 있어서 무인지경은 아니었는데, 다른 교단에 비해서 오랜 역사의 비중의 큼에도 겨레에 기여한 것이 영 없습니다. 이후에라도 겨레의 아픔을 외면한 죄도 뉘우치고 앞으로 승려들은 교단이 잘 되는 것도 염두에 두지만 더불어 겨레사랑하고 나라걱정하는데도 옛날 만해나 도산처럼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런 얘기를 늙어가면서 계속 할 작정입니다. 선생님께서 계속 건강하셔가지고 제대로 갈 길 모르는 중들에게도 좋은 지침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백기완 : 여러분들이 더 앞장서야 하고 나같은 사람이야 뭐...

설조 : 선생님께서는 어려운 시기에 한 몫을 단단히 하셨죠. 여러사람에게 지표가 될만한 일을 하셨죠. 고생하신 분들이 지금 선생님 외에는 몸으로 감당하신 분이 지금 선생님 밖에 안 계십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십시오.

양기환 : 선생님은 구월산 호랑이가 되셔 가지고 기백 때문에 안기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할 때도 다른 사람 한 대 맞을 때 선생님께서는 열 대 맞으시고,,,김세균 교수님이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셨을 때 선생님도 같이 끌려가신거예요. 이놈들이 고문을 하면서 스피커로 들리게 해주는 거예요. 다른 사람 맞으면 어이쿠 어이쿠하는데, 선생님 고문소리를 들으신 거예요. 아파다는 소리를 선생님이 안 하실려고 이를 악물고 악 악 짐승소리를 내셨다고 해요.

설조 스님이 병원에 나오셔서 보식으로 죽을 드시는데 선생님 모시고 죽을 한그릇하고 가면 어떨까요?

백기완 : 내가 뭐 나같은 사람하고 고승께서(하하하)

설조 : 아이 뭐. 그렇게 놀리셔도 괜찮습니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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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태를 월태라 2018-10-16 10:21:22
하거늘~
왜 열폭하노?
아직도 87세 노인이라고 짖어대는 것들 눈엔 가시겠지.^^
백기완씨 재야운동 할 때, 월태는 뭐했데?
그시절 법주사 주지하며 28억 훔칠 시기 아니였던가?
뭐하러 백기완씰 찾아가.!
한물 간 사람들 시대의 임무가 끝났으면 자기 자리를 조용히 지킬 것이지~
살아온 길이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 뭘?
도와달라고?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갈때 가더라도 2018-10-15 18:00:10
제발 이 화상아
욕. 좀 하지 말거래이

효안 이정한 2018-10-15 13:51:11
아직도 자승의 쓰레기들이 댓글을 달면서 헛소리를 하는구나.
이왕 부역을 할려면 자승인지 저승인지 그 놈부터 욕하면서 교묘하게 개혁파 불자들을 와해시키는 간교한 놈이 되든지...
자승의 무리는 결국 내려 앉는다.
불교의 비판세력이 결집하고 있고, 이권과 권력에 눈 먼
잡승둘이 니전투구를 할테니...
우리는 꾸준히 한 길로 가면 된다.

불교의 어른은 2018-10-15 12:07:39
불교의 어른은 천인사인 하느님과 사람의 스승인 불 세존과
인천사인 사람과 하느님의 스승인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월태가 누구신가? 2018-10-15 11:45:22
여기 닷컴에 오면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네요
월태가 누구신가요? 한번
죽었던 사람을 자꾸 무덤에서 끄집어 내서 좋을것은 없을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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