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총 스님]이 시대가 요구하는 한국불교의 역할
[혜총 스님]이 시대가 요구하는 한국불교의 역할
  • 혜총 스님
  • 승인 2018.11.0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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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총 스님/한국불교발전연구원 이사장.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한국불교의 역할

혜 총/한국불교발전연구원 이사장

서론 : 한국불교의 어제와 오늘

한국불교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선각자들을 배출했다. 이러한 선각자들은 민족의 숨결이 되었고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서도 민족의 등불이 되었다. 이와 같은 저변에는 오랜 역사를 이어오는 특별한 전통이 있다.

즉, 당대의 최고 선지식인 명안종사를 중심으로 하는 승가(僧伽)의 수행가풍과 사자상승(師資相承)이다. 이러한 한국불교 승가의 근, 현대사를 일제강점기, 조국광복 이후, 통합종단 탄생, 개혁종단 출범 순서로 되짚어 보면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고자 한다.

1. 일제강점기

치욕의 역사인 일제강점기 총독부는 순수한 한국불교의 승가를 해체하는 정책으로1911년 전문 7조로된 사찰령을 제정했다. 전국사찰의 관리체계를 31개 본사와 그 관하의 말사로 편성한 다음, 총독이 본사 주지를 임명하고 각 도지사가 말사주지를 임명했다.

총독은 전국 본, 말사 주지들에게 취처를 장려하고 우대하면서 각 도지사들로 하여금 행정공문을 보내 독신승려나 참선 수행하는 승려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거나 환영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 본사 주지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열고 천황으로부터 하사 받았다는 은잔으로 일일이 술을 권했다. 이러한 풍토에서 한국불교 종단의 지도급인 본사 주지들에게는 계율이 무의미하게 되었고 취처하는 것은 곧 총독의 신임을 얻어 출세를 보장받는 통과의례가 되었다.

승려가 여색을 일상화하고 주육을 즐기며 안락에 빠졌으니 수행은 오히려 괴로운 일이 되었다. 일제가 의도한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소위 대처승들이 사찰을 장악하였고 독신 비구승들은 사찰에 기거하기도 어려웠다. 한국불교 종단의 지도급 승려들은 이처럼 급속하게 타락한 집단으로 전락했다.

당시 용성(龍城)스님은 총독과 일본 내무대신에게 진백서를 보냈다. 또 석왕사 주지 대전(大典)스님, 해인사 주지 회진(會眞)스님 등 127명의 스님들도 총독에게 진정서를 냈다. “일본의 정책이 한국불교를 파괴하고 있으니 시정하라” 고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총독은 이런 일이 있으면 더욱더 대처승들로 하여금 수행하는 승려들에게 박해를 가하도록 교육했다. 대처승들은 법당에서 천황폐하수만세(天皇陛下壽萬歲)를 축원하고, 수행승들은 저마다의 토굴 수행처에서 조국광복을 축원하며 정진했다.

2. 조국광복 이후

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을 맞았다. 당시 한국불교 종단은 조계종이 유일했다. 조국광복을 맞이하고 13일 만에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본, 말사 주지회의가 열렸다. 그동안 일제의 식민지 정책으로 장려되었던 승가의 폐단을 종식하고 정법을 되찾자는 취지였다.

이 자리에서 ① 31본산제도를 폐지하고 도별교구제도를 시행한다. ② 출가 독신자는 교적부에 승니(僧尼)로 표시하고, 재가 대처자는 교도로 부른다. ③ 안으로는 수도교단(修道敎團)만 재건하고, 밖으로는 대중불교를 실현한다. ④ 사찰재산을 통합하여 수도, 홍법, 사회복지사업으로 일원화한다. ⑤ 사찰은 수도, 교화, 홍법, 기원 및 사회복지 등 5종으로 구분하여 활동한다는 ‘불교교단 유신안’ 이 제출되었다.

또 1945년 12월에는 석가세존의 근본교리로 돌아가 조선불교의 역사적 전통을 되살리고 매불행위를 일체 엄금한다는 내용과 봉은사 본, 말사회의에서 결의한 내용을 중심으로 불교혁신을 위한 10개항을 제창하는 ‘조선불교혁신회’ 가 조직되었다.

1947년에는 불교혁신연맹에 속한 백원기(白願基), 유성갑(柳聖甲) 두 스님이 주동하여 선학원에 불교총본산이라는 간판을 걸고 당시 대처승들을 친일파로 몰아 사표를 내라고 공박하고, 김용담(金龍潭), 장상봉(張祥鳳), 이부열(李富烈), 곽서순(郭西淳)스님 등은 총무원과 맞서서 불교혁신을 주장했다.

1948년에는 종정으로 추대된 만암(曼庵)스님은 종헌에 출가 독신자는 수행승으로 재가 대처자는 교화승으로 명문화 하고, 사찰의 주지는 당연히 수행승이 맡아야하니 그것을 실현하도록 방법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1953년에는 불국사에서 비구승 수행사찰로 18개 사찰을 지정하는 법규위원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대처승 주지들의 극렬한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종정의 지시도 당시 종단을 장악한 실세들에게는 마이동풍인 현실이었다.

종단을 장악한 대처승들은 7천여 명이었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비구승들은 8백여 명이었다. 비구승이 불교의 적자임에는 틀림없지만 종권 없는 비구승들은 대처승 총무원의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미국망명에서 돌아온 이승만대통령이 어느 날 사찰을 찾았다. 그런데 옛날에 보았던 신성하고 청결했던 사찰을 볼 수 없었다. 사찰이 모두 대처승들의 생활 터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 정릉의 경국사에 들렸다가 독신 비구승을 만났다.

당시 경국사 주지는 보경(寶鏡))스님이었다. 스님은 독신 비구승으로 청정한 생활을 하면서 가람을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이를 본 대통령은 비구승이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비구승을 적극옹호하고 나섰다. 그동안 전혀 힘없던 비구승들에게 막강한 지원세력이 된 것이다.

1954월 5월 21일 이 대통령은 담화문을 발표했다. 비구승에게 불량답을 돌려주고 적극 보호하라는 내용으로 말미에는 “타락되어가는 건물을 하루 빨리 고칠 수 있게 할 것이요 막대한 고대유적을 길게 남기게 할 것이니 지체 말고 실시해주기를 부탁하는 것이니 그중에 긴요한 조건은 우리불도를 숭상하는 중들만을 정부에서 도로 내주는 전답을 개척하며 지지해가도록 할 것이니 이 의도를 다시 깨닫고 시행해 나가기를 지시하는 바이다” 고 하여 그의 의지를 세상에 알렸다.

1954년 8월 24일 비구승대표 64명이 선학원에 모여 ① 교단정화, ② 도제양성 ③ 총림창설 등을 결의하고, 다음날 효봉(曉峰), 동산(東山), 금오(金烏), 청담(靑潭), 인곡(麟谷), 성철(性徹), 석호(石虎), 향곡(香谷), 월하(月下)스님을 종헌제정위원으로 선출하는 ‘제1차 전국비구승대표자대회’ 를 열었다.

1954년 9월 29일 종정 만암(曼庵)스님과 비구, 비구니 146명이 선학원에 모여 全文105조로 된 종헌을 통과시키고. 다음날 종정 만암, 부종정 동산(東山), 도총섭에 청담(靑潭)스님으로 구성한 다음 ① 대처승은 승적에서 제적한다. ② 대처승은 호법중으로 한다. ③ 교권은 비구승에게 환원하게 한다는 3개항의 결의하는 ‘제2차 전국비구승대표자대회’ 를 열었다.

1954년 10월 10일 비구승의 선학원측과 대처승의 총무원측은 대표자 회담을 통해 종권인계에 대한 협상을 하였으나 이견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한편 그동안 비구승의 정화운동을 적극 지지했던 종정 만암스님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정화의 원리는 찬성하나 방법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선학원측은 만암스님을 종정에서 해임하고, 동산스님을 종정으로 금오스님을 부종정으로 추대했다.

1954년 11월 5일 선학원의 비구승 80여명이 조계사에 입주하였다. ‘태고사(太古寺)’라는 간판을 내리고 ‘조계사(曹溪寺)’ 간판을 걸었다. 이로 인하여 양측이 충돌하고 난투극이 벌어져 상처 입은 사람이 다수 발생했다.

1954년 12월 10일 비구 비구니 4백여명이 조계사에서 정화불사를 선언하고 가두시위를 결의하는 ‘제3차 전국비구승대표자대회’ 를 열었다. 그리고 눈 덮인 서울거리를 돌아 지금의 청와대인 경무대 앞에서 일제히 엎드려 대통령에게 정화불사의 성취를 호소했다.

1955년 2월 4일 당시 문교부의 주선으로 비구, 대처 각5인을 대표로 구성하는 ‘불교정화 수습대책위원회’ 를 열고 이른바 승려 8대 원칙을 결의했다. ① 독신 ② 삭발염의 ③ 수도 ④ 20세 이상인자 ⑤ 불주육초(不酒肉草) ⑥ 불범4바라이 ⑦ 비불구자 ⑧ 3년 이상 승단생활을 한 자라는 내용이다. 다음날 이선근 문교부장관은 승려 8대 원칙에 부합되는 승려가 사찰주지로 나가기를 양측이 자주적으로 시행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처승측의 반대로 정화불사는 답보상태에 빠져들었다.

1955년 6월 10일 조계사 법당에서 단식기도를 하던 비구승들이 대처승들의 습격을 받아 31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대통령은 5일 후에 담화문을 발표했다. “대처승들은 모든 사찰에서 조용히 물러갈 것이며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1955년 7월 15일 비구승측과 대처승측은 조계사 법당에서 ‘제3차 사찰정화대책위원회의’ 를 열고 ‘전국승려대회’를 개최하여 종회의원을 선출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회의가 끝난 다음 대처승측은 이 결의가 무효라고 하며 반대했다. 그러나 비구승측은 이 결의에 따라 1955년 8월 1일 전국승려대회를 강행하고 ① 종회의원 천거 ② 종헌 수정통과 ③ 종정 동산스님, 총무원장 청담스님, 감찰원장 금오스님, 종회의장 효봉스님으로 하는 종단 인적구성을 마쳤다.

1955년 8월 11일 비구승측과 대처승측은 문교부의 간곡한 요청과 주선에 따라 다시 열린 ‘제4차 사찰정화대책위원회’ 에서 지난 8. 1. 비구승측이 강행한 ‘전국승려대회’를 가결하고, 다음날 조계사에서 다시 ‘전국승려대회’ 를 열어 새 종정에 석우(石友)스님을 추대했다. 이를 계기로 비구승측이 전국사찰을 접수하는 정화불사의 명분을 얻게 된 것이다.

3. 통합종단 탄생

일제강점기인 36년간 왜색화 된 불교계를 대처승들의 협조 없이 완수할 수 있는 불사가 아니었다. 1950년 후반기는 비구승측과 대처승측이 대립하는 정화불사와 사법부의 송쟁으로 이어졌다.

1960년 11월 대법원에서 비구승측이 패소하고 최대의 고비를 맞았다. 비구승측은 “불법에 대처승은 없다” 고 항거하며 불복했다. 소위 정화 6비구로 이름하는 성각, 월탄, 진정, 도명, 도현, 성우스님은 대법원장을 찾아가 할복으로서 “불법에 대처승은 없다” 는 결연한 순교의지를 보여주었다.

1960년 11월 25일 당시 동아일보는 “불교분쟁사건에 대한 대법원판결에 불만을 품은 비구승, 비구니 및 신도 4백여명이 24일 하오 대법원 청사에 난입 긴급 출동한 경찰관 3백여명과 충돌하여 대법원, 서울고법, 서울지법, 대검, 서울고검 및 서울지검을 포함하고 있는 법원청사는 사법사상 전대미문의 대혼란을 일으켰다. 이 난입사건으로 승려 6명이 중상을 입고....”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사를 통해서 보듯이 당시의 처절했던 비구승들의 상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비구승측과 대처승측의 소송들이 대부분 비구승측의 주장대로 정리된다. 국민들도 사법부도 비로소 독신 비구승의 실체를 이해하고, 일제 사찰령으로 말살된 한국불교 종단의 정체성도 회복하게 된 것이다.

1962년 마침내 통합종단 ‘대한불교 조계종’이 탄생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에 들어섰다. 조국광복 이후의 종단 수뇌부는 당대 최고 선지식들이 중심에 있어서 별도의 종헌규정이 없어도 종단이 바르게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지식들이 서서히 서거하고 정화불사의 주체세력들이 약화되면서 종단은 권력의 갈등으로 인한 혼란에 빠져든다.

1972월 7월 종정으로 취임한 고암(古庵)스님은 총무원장 경산(慶山)스님과 권한행사에 관한 문제로 마찰을 빚으면서 1974년 7월에 개최된 전국승려대회를 계기로 종정을 사퇴했다.

1974. 8월 종정으로 취임한 서옹(西翁)스님은 중앙종회와 갈등을 빚으면서 소위 조계사 총무원, 개운사 총무원이라는 종단 양분상태로 이어진 가운데 1978년 종정을 사임했다.

1982년 3월 총무원장으로 취임한 진경(軫經)스님은 신흥사 주지인사에 관한 문제로 종도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1983년 9월 개최된 조계사 전국승려대회를 계기로 진경 총무원장은 물러나고 ‘비상종단운영회의’ 를 출범되었다. 그러나 비상종단운영회의는 1984. 8. 1. 개최된 해인사 전국승려대회를 계기로 퇴출되었다.

4. 개혁종단 출범

1986년 8월 총무원장에 취임한 의현(義玄)스님은 임기종료를 앞두고 총무원장 3선연임에 집착하다가 종도들의 반대에 부딪쳐 1994년 4월 개최된 조계사 전국승려대회를 계기로 총무원장에서 퇴진했다.

1993년 12월 종정으로 취임한 서암(西庵)스님은 1994년 4월 개최한 조계사 전국승려대회에서 종단의 전권을 수임한 개혁회의가 종정에 대한 불신임을 하면서 물러났다.

1994년 5월 종정으로 취임한 월하(月下)스님은 총무원장 월주(月珠)스님의 3선 출마와 관련하여 종도들에게 제2의 정화불사를 이룩하라는 교시로 내렸다가 총무원장 직무대행인 도법(道法)스님이 제기한 사법부의 송쟁과 종도들의 불화에 시달리다 물러났다.

1994월 11월 총무원장에 취임한 월주(月珠)스님은 임기종료를 앞두고 총무원장 3선 출마의사를 표명했다가 월하 종정의 교시와 종도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 종무행정이 중단되고 종단 위상이 추락되는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여 1998. 11. 19. 총무원장후보 사퇴의사를 표명하고 다음날 임기를 종료했다.

2017년 11월 총무원장에 취임한 설정(雪靖)스님은 선거 전부터 받아오던 자신의 범계 의혹으로 인하여 종단 안팎의 사퇴압박에 시달리다가 2018년 8월 이른바 종단 사상 최초의 '총무원장 불신임' 이라는 탄핵을 당하고 총무원을 떠났다.

그리고 2달 만에 다시 총무원장 선거일이 확정되고, 4명의 후보가 등록을 마쳤다. 그러나 선거 이틀을 앞둔 2018년 10월 26일 3명의 후보가 공동으로 후보사퇴를 하고, 단일후보로 남은 원행(圓行)스님이 제36대 총무원장으로 당선되어 현재 그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한국불교가 지나온 어제의 역사를 통해 오늘을 비교해 보면, 외형적으로는 엄청나게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종권 교체상황에 있어서는 불교적인 이념이나 갈등보다는 종권 장악을 목적으로 한 시비나 분쟁으로 이어져온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지난 제35대 총무원장 설정스님이 총무원을 떠나기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종단의 기득권층을 향한 쓴 소리를 한 것이다. '금권 선거와 탐욕, 재정투명' 등을 운위하면서 한마디로 지금의 조계종은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고 했다.

또 지난 제36대 총무원장 후보로 출마했던 3명의 후보가 동반사퇴하면서 직전에 가진 공동기자에서도 재차드러나났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두터운 종단 기득권세력들의 불합리한 상황들을 목도하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권만 있으면 불교는 안중에도 없는 기존 정치세력 앞에 종단변화를 염원하는 저희들의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통감했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번 선거가 현재대로 진행된다면 종단 파행은 물론이거니와 종단은 특정세력의 사유물이 되어 불일(佛日)은 빛을 잃고 법륜(法輪)은 멈추게 될 것”이라며 “이처럼 불합리한 선거제도를 바로잡고자 이번 제36대 총무원장 후보를 사퇴하기로 결의했다”는 사퇴이유를 밝혔다.

소납은 오늘날 비구승 중심의 이와 같은 현상은 정화불사 당시 비구승 지도부가 전국승려대회를 기획하고, 기존 종헌을 대본으로 종헌을 초안하면서 승려를 비구, 비구니로 명문화하고 대처승을 배제하는데 주안점을 둔 나머지 수행승가의 핵심인 지계(持戒)중심의 실천규정을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데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불교의 청정성과 승가의 얼굴은 지계중심의 수행가풍이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선지식과 원로스님을 중심으로 하는 수행기반을 새롭게 조성하고 자정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 불교는 물론이거니와 승가의 미래도 대단히 어렵게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본론 : 재가불자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난해부터 한국불교의 총본산인 조계사를 중심으로 과거에 쉽게 볼 수 없었던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종단의 지도급 스님이 천막에서 단식시위를 하고, 불교를 외호해야 할 재가불자들이 승가를 향한 극단적인 구호를 새긴 푯말을 들거나 휘장을 두르고 때로는 삼삼오오 때로는 단체로 모여 가두시위를 하는 모습, 또 공중파와 종편의 방송들이 번갈아 가면서 승가 내부문제를 심층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하는 현실,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거리로 나와 승가에 대해 원색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 과연 승가에 대한 애정인지, 분노인지, 비방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지금처럼 재가불자들이 승가에 대해 이처럼 극단적으로 나오고 다가오는 것을 예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다.

다행히 근래에는 조계사 주변의 천막도 철거되고, 시위도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출가단체나 재가단체들도 이곳저곳에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토론문화가 성숙되고 있다. 특히 그 동안의 재가운동을 전개하였던 주체들도 자신들도 돌아보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한숨을 돌렸다.

이에 소납은 재가불자들의 연대기구인 “불교개혁행동” 이 지난 10월 13일 서울시청 한화센터에서 개최한 워크숖에서 개진하였던 내용들을 통해 지금 재가불자들은 이 시대에 무엇을 말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재가운동의 평가와 나아갈 방향

지지협동조합 김경호 이사장은 지금까지 재가불자들의 활동에 대해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불교의 계승과 존립이 불가능한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주인임을 자각한 재가불자들이 주인으로 나서기 위한 역할을 시작한 것이다. 한국불교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야 하며 이미 그와 같은 발걸음을 내딛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기득권의 일탈 속에 내부 자정능력의 한계가 드러나고, 제도권 밖에서 변화의 요구가 이어지며 비주류를 중심으로 새 질서를 구축하는 것은 불교가 새 질서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늘 보여 왔던 양상이다. 지금 우리의 재가운동 역시 불교사의 새로운 사상조류를 만들고 있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했다.

또 “조계종은 일부 권승들의 적폐 카르텔 문제를 넘어 구조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고 지적하면서 “비구 1부중 중심으로 돌아가는 종단 입장에서는 출가자 감소가 더 큰 위기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승단 자체가 붕괴할 수 있고 절(사찰)을 유지할인구가 없어 허덕이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고 했다.

그리고 불교개혁운동이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① 중앙중심 활동의 지역거점화 ② 시민사회와의 폭넓은 연대 ③ 국가사회 법제재검토 및 대안마련 등이 진행되어야 한다며 종단의 적폐 권력층이 두려워하는 것은 ‘승려대중의 조직화와 외부의 여론’ 이라고 했다.

그리고 “불교적폐를 해소하기 위한 우리의 싸움방향 또한 매우 단순해진다. 승려대중의 조직화와 외부 사회여론 등 권력층이 두려워하는 지점을 건들면 된다” 고 강조하면서 며 향후 이들이 진행할 구체적인 방향까지 예고했다.

2. 청정승가를 구현할 수 있는 길

또 발제자인 이도흠 교수는 사찰운영위원회 수행과 재정의 분리를 강조했다. “종단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고히 하려면 수행과 재정을 분리하여 권승들의 권력과 자본독점 등의 전횡을 막고 나아가 청정승가 공동체 회복을 위한 사찰운영위원회 거버넌스(governance, 다양한 행위자가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운영 방식) 시스템을 보다 확고히 해야 한다” 는 것이다.

이어 “재정과 수행의 분리가 문제의 근본적인 치유방법이고, 지도층 승려들의 범계및 비리 행위가 임계점을 넘어섰음에도 이를 감시, 견제하는 장치가 전혀 작동하지않고 있는데 대해 이는 전 총무원장을 핵심고리로 하는 권승 카르텔이 과도하게 권력과 재정을 독점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적폐의 주도자이자 책임자인 전 총무원장을 승려대회 등을 통해 멸빈하거나사법기관의 힘을 빌어 엄정 수사토록 하여 권승 카르텔의 핵심 고리를 끊고 판을 새롭게 짜야만 청정승가를 구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소납은 한국불교가 처한 오늘의 현실은 단순히 몇몇 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재가불자들의 진정한 주장은 국민과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는 한국불교 승가의 현실에 대해 진정으로 변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로 이해싶다.

결론 : 이 시대의 한국불교 역할은 무엇인가?

1. 모든 제도가 수행위주로 전환되어야 한다.

종단은 그동안 운영체계의 근간인 종헌 종법을 수차례에 걸쳐 개정하였다. 그러나 승가의 근본인 부처님의 계율과 율장정신이 하나로 스며들지 못했다. 따라서 오늘날 승단의 풍토는 수행보다 명리를 추구하는 승려가 늘어났다.

승가의 수행과 관계없이 문중과 계파의 기득권에 의해 주지 등 각급 공직에 나아가 하루아침에 큰스님의 반열에 오른다. 이들은 본분을 망각하고 부처님의 율장을 어기는 파계를 행해도 누구하나 바로 잡아주는 도반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함께 권력을 누리면서 승단을 오염시켰다.

주지중심의 관리불교가 조실중심의 수행불교로 돌아가고, 행정위주로 된 모든 종무제도는 수행위주의 외호제도로 바꿔야 한다. 부처님의 계율과 율장정신에 바탕한 수행생활로 불교의 참모습을 회복하는 법과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4년의 개혁종단도 승가공동체의 근본이 되는 부처님의 계율에 의거한 청정수행을 하나로 묶어내지 못하므로 종도들은 집행부를 향해 “개혁의 정체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개혁종단은 민주국가체제의 3권 분립 틀을 모방하려했으나, 비대해진 총무원과 종회에 반하여 종단 스스로의 정화를 위한 호법부와 호계원이 독립된 사법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권력의 분산을 통해 견제와 대화로 정치력을 발휘하는 민주주의를 어설피 모방하여 승려들의 권력지향을 부축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제도를 종단운영 체계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승들은 이 제도를 고집하면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계속하여 유지하였다. 결국 사찰이 주지를 중심으로 하는 관리불교로 바뀌고 마침내 삼보정재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못한 가운데 청정승단이 오염되었다고 본다.

특히 94년 개혁종단이후 종단권력 주변에서 기생하는 승려들은 종권 지향적으로 변하여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찾아볼 수가 없다. 수행력보다 권좌에 앉아 큰스님으로 대접받는 기이한 양태가 나타나면서 승단의 위계질서와 법계질서가 무너졌다고 한다. 이에 관리불교의 병폐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행자의 본분인 지계중심의 수행가풍이 정착되어야 한다.

종헌을 비롯한 모든 종법을 수행 위주로 개정하고, 모든 종무는 수행을 위한 외호를 우선으로 그 정신을 바꾸어야 한다. 석가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교화하지 않으셨다. ‘자미득도선도타(自未得度先度他)라는 말은 퇴굴정신(退屈情神)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세상을 기만하는 말이다. 투철한 견처(見處)도 없이 행하는 사업은 속업(俗業)이 되거나 마업(魔業)이 될 수 있다.

말만 앞세우는 강의나 설법, 병원이나 복지시설의 경영과 영리는 일반인이 더 잘한다. 그것도 포교와 교화수단에는 필수적인 과제이지만 그보다도 중생의 마음을 바로세우고 종교인의 양심을 갖도록 교화하는 일이 우리 승가의 우선적인 역할임을 명심해야 한다.

불교가 사회를 밝히는 등불이 되고, 승가가 국민을 선도 목탁이 되기 위해서는 마땅히 국민과 사회로부터 신뢰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승가는 물론이고 재가불자들도 지계를 중심으로 화합하고 수행풍토를 조성하는데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국민과 사회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면 포교활동도 할 수 없고 자연히 부패하고 도태된다. 현실적으로 너무나 늦었다 시급하다.

우리 승가는 오랜 역사를 이어오는 원로중심의 수행가풍과 사자상승의 빛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우리 시대의 선지식과 원로스님을 찾아 나서자. 조그마한 허물을 보고 매달리지 말고 큰 인격을 보는 지혜안(智慧眼)을 열고 길을 묻자.

원로스님을 중심으로 수행가풍을 진작하고,

원로스님을 중심으로 사부대중이 화합하며,

원로스님을 중심으로 전법교단을 조성하자,

이것이 소납이 생각하는 이 시대의 한국불교의 역할이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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