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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운서산 장육사

기사승인 2018.11.09  20: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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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김규순의 풍수이야기 143.

   
▲ 장육사로 들어가는 운서교

장육사(莊陸寺)는 나옹화상(1320-1376)이 영해의 운서산(雲棲山, 519.9m) 아래에 창건한 절이다. 나옹화상은 영해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일개의 영해면으로 전락해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영해도호부로 영양현과 청기현을 거느렸다. 남쪽 영덕현까지는 22리였고 서쪽 진보현까지 80리 서쪽 예안현까지 126리였고 북쪽 평해까지 30리가나 되었다. 1355년에 창건했다고 하나 그 당시 나옹화상은 1347년부터 구법활동을 했고 1358년에 귀국하였으니 아마도 공민왕이 나옹화상을 위해 지어준 사찰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 대웅전 안에 모셔진 나옹화상의 위패


나옹화상과 엄청난 인연을 지닌 분이 이색이다. 두 사람은 동시대에 영해에서 태어났고 죽은 장소도 신륵사로 같다. 이색(1328-1396)은 “관어대(觀魚臺)는 영해부 동해변 바위 아래에 있는데 노는 불고기를 셀 수 있을 정도이다. 관어대라 명명한 이유이다. 나의 외가동네이다.”라고 적고 있다. 나옹화상보다 8년 늦게 태어났으나 20년을 더 오래 살았다.

   
▲ 처장에 그려진 비천상

장육사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도 관음전에는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3호)이 모셔져 있고 대웅전 한켠에는 나옹화상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지형적으로는 우백호가 물을 밀어내었고 우백호가 물을 거두고 있는 형세이나 물의 힘에 밀려 사찰터가 융성하지 못하고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안산은 높게 솟구쳐 수행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 장육사 문루


지형적으로 흠결이 있지만 나옹화상의 공력으로 사라지지 않았고 천리 밖에서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 부근에는 나옹화상 탄생지 까치소와 반송유적지가 있다. 나옹화상이 지팡이를 꽂으면서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내가 살아 있고 이 나무가 죽으면 나도 죽은 줄 알아라”라고 했다. 그 지팡이가 반송으로 자라 625년을 살다가 1965년에 고사되었지만 그의 선시(禪詩)는 세월을 뛰어 넘고 있다.

   
▲ 장육사 대웅전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愛而無憎兮 如水如風而終我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怒而無惜兮 如水如風而終我.

김규순 지리학박사

<저작권자 © 불교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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