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예수는 미혼모의 사생아가 아니다.

기사승인 2018.12.17  10:48:13

공유
ad27

- [연재] 배길몽의 지피지기 17.

article_right_top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에게만 좋은 세상을 원한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좋은 세상은 동식물이나 자연에게는 나쁜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지배자가 있다면 그는 인간의 행복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질서를 유지해야하므로 인간에게만 좋은 세상은 허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세상이 아니라 바른 세상을 추구해야 한다. 필자가 말하는 바른 세상이란 우주의 질서에 부합하는 세상 즉 인간에게만 편한 세상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가 함께 조화로운 세상을 말한다. 그런데 자연과 사회가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려면 우주의 작동 원리를 이해해야 하고 그러려면 과학은 물론 타종교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사회 현상도 살펴보아야 한다.

기독교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에게 구원과 영생을 준다는 예수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기독교의 주장은 허구가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죄가 있다는 증거는 찾기 쉽지만 죄가 없다는 증거를 보여주기는 어렵듯이, 예수가 신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하기는 어려우므로 역으로 예수가 사람의 자식이라는 증거를 찾아보는 것이 매우 유효한 방법이다. 그래서 예수의 어머니는 분명하지만 아버지가 불분명하므로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예수의 양아버지인 요셉과 생모인 마리아가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서 애급으로 갔다고 하지만 사실은 요셉과 마리아가 자신들의 부적절한 관계를 감추려고 애급이나 먼 다른 곳에 도망가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세례요한의 집에서 오래 머물렀다는 누가복음의 기록과 세례요한의 집안 사정 등으로 보아서 예수는 세례요한의 이복동생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천 년 전의 중동의 사회 풍습에 의하면 장성한 여자가 남의 집에서 산다는 것은 노예나 첩의 경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요한의 아버지(제사장 사가랴)는 부인이 수태를 못하자(누가복음 1:5)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첩으로 취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6개월 먼저 임신한 본부인이 아들(세례요한)을 낳았으므로 마리아가 본부인으로부터 박해를 받았거나 받을 것이 두려워서(만약에 본부인이 딸을 낳았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자기와 절친한 요셉(목수)과 야반도주를 했을 것이다.

마리아는 사정이 매우 급해서(만약에 아들을 낳으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으므로) 만삭임에도 불구하고 피난길에 올랐고 그러다가 길거리(마구간)에서 출산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호적신고를 위해서 여행을 갔다고 하지만 호적신고는 모든 식구가 함께 가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대표가 혼자 가서 하는 것이며 더구나 아직 결혼도 안한 여자를 데리고 날씨도 안 좋은 12월 하순에(마태복음 24:20에서 겨울은 이동하기 매우 불편한 날씨라고 기록하고 있다) 호적을 하러 여행을 갔을 리는 전혀 없다. 게다가 로마 황제의 호적 명령을 시행했다는 구렌요 총독은 예수가 탄생하고 몇 년 후에 부임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 때문에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에서도 증명이 된다.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또 요한이 잡혀간 직후에 그의 뒤를 이어서 지도자가 된 이유가 그들의 혈연적인 관계에서 연유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육친의 아버지를 직접 대하지 못하는 예수의 콤플렉스가 친 아버지 대신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많다. 생물학적인 견해로 볼 때도 예수의 뛰어난 능력은 목수인 요셉의 유전자보다는 제사장인 사가랴의 유전자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필자의 추정이 일부 틀릴 수도 있지만 적어도 마리아와 요셉은 부적절한 관계였으며 그것을 감추려고 먼 곳(애급)으로 도망갔던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수가 인간이라면 앞뒤 정황으로 보아서 예수는 제사장 사가랴의 서자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에게 선생님의 부모는 누구냐고 물었을 때 입장이 난처한 예수가 농담처럼 ‘나는 너희들을 구하려고 하늘에서 왔다’고 했을 것이고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문이 났을 것이다. 예수가 초기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자(사람의 아들)로 출발해서 ‘메시아(하나님이 보내준 지도자)’로 진급했다가 ‘하나님의 아들’로 둔갑하고 다시 ‘하나님의 독생자(외아들)’로 변신했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으로 진화했다.

성경에는 예수의 성장 기록이 없는데 누가복음에 유일하게 소년 예수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런데 예수의 부모는 여행 중에 예수가 없어진 것을 하루가 지나도 모를 정도로 예수에 대해서 무관심 했다. 그런데 성경의 주장처럼 예수가 탄생할 때에 천사가 나타났고 헤롯왕이 온 나라의 어린이를 죽이면서까지 예수를 없애려고 했다면 예수의 부모들이 예수가 사라져도 모를 정도로 예수에 대해서 그렇게 무관심할 수가 없다. 그리고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말했는데 그 말을 부모가 깨닫지 못했다고 한 것(누가복음 2:50) 등으로 보아서 예수가 탄생할 때에 있었던 천사의 계시나 어린이 대량학살사건은 없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대량 학살 사건이 있었다면 예수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숨어살아야 하며 소년 예수가 예루살렘을 방문할 수도 없다.

추정하건대, 예수는 마리아의 남편인 목수 요셉의 친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집안에서 천덕꾸러기가 됐을 것이고 천재였던 예수가 새로운 세상을 찾아서 가출했다가 많은 공부를 마치고 어른이 돼서 돌아왔으므로 예수의 성장기록이 성경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예수는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을 따라가서 선진국의 문물과 의술(치료능력)을 익히고 돌아왔기 때문에 유태인들이 그를 존경했는지도 모른다. 예수는 우여곡절 끝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집으로 가지 않고 추종자들과 생활했으며 그래서 가족들이 예수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으나 어린 시절에 홀대받은 기억과 나쁜 감정이 남아있던 예수가 ‘누가 내 어머니며 가족이냐?’라고 하면서 그들을 외면했다(마태복음 12:48~49, 누가복음 8:19~21).

예수는 자신이 가출해서 겪은 수많은 고생과 오랜 타향살이에서 품었던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자기가 바라던 바람직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예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과 같은 신세였으며 의붓아버지인 요셉에게도 거절당했던 서러운 처지였다)를 그 유명한 탕자의 이야기로 비유해서 설교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설교(소망)와는 정반대로 예수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영원한 탕자가 됐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독한 술을 마시고 혼절한 것을 로마군이 사망한 것으로 착각하고 시체를 버렸는데 술에서 깨어난 예수가 피신하면서 제자들에게 곧 오겠다고 재림을 약속하면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제자들은 예수가 곧 돌아오면(이때 까지만 해도 재림은 구약에 의한 메시아의 강림을 의미했으며 아직 신약시대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나라 즉 예수의 왕국이 실현된다는 희망찬 꿈(구약의 실현)을 갖고 기다리다가 예수가 돌아오지 앉으므로 추종자들을 무마하기 위해서 새로운 약속(신약; 정확히는 새로운 약속이 아니라 약속 변경이다. 건설 공사로 예를 들면 신약은 새로운 공사가 아니라 설계 변경에 의한 공사 연장에 불과하다)을 만들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이유가 종교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였다. 예수는 수년 내에 로마가 멸망하면 이스라엘이 독립하고 자신이 왕이 된다고 사람들에게 말했으므로 소위 유언비어 유포 죄에 해당되었고 그래서 십자가에 달린 팻말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씌어있었던 것이다. 성경 곳곳에서 잘 나타나듯이 예수는 종말과 심판을 수년 내에 행할 것이라고 설교했는데 이런 행태는 요즈음에도 종말이 수년 내로 온다며 신도들을 모으고 있는 사이비 종교나 이단들의 모습과 유사했다. 예수가 살았던 당시에도 예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고(사도행전 5:36~37) 오직 예수만 사도바울의 뛰어난 조직 능력 덕분에 유일하게 성공했다.

예수는 제자들을 배반하고 돌아오지 않았지만 제자들은 그가 돌아오리라고 굳게 믿고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조직을 확대하고 정치자금도 모았으며 기독교인들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예수를 기다리고 있다. 석가는 왕의 자리(욕심)를 버리고 낮은 데로 임해서 진리를 깨우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예수는 반대로 왕의 자리가 욕심나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인양 하면서 제자들과 세상을 속였으며 끝내 회개와 사과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정말로 천당과 지옥이 있다면 정 반대인 두 사람의 행로를 비교해보면 한 사람은 지옥에 갔고 한 사람은 천당에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독교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인류를 구원했다고 주장한다. 예수가 흘린 십자가의 피가 인류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를 피바다에 빠트렸다. 수많은 순교,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유태인 학살, 이라크 전쟁, 911폭발사건 등이 기독교와 직접 혹은 간접으로 관련돼서 일어났다. 한 사람의 무책임한 언동과 제자들의 무분별한 욕심이 2,000년 동안 끊임없이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하고 있고 그의 추종자들인 기독교는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고 주변 종교들과 싸움을 일삼는다.

예수가 원수도 사랑하라고 했지만 사실은 악한 자들을 징벌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을 감추기 위해서 위장한 말에 불과하며 그렇게 아무런 능력도 없던 예수가 온 세상을 구원했다는 기독교의 주장은 참으로 억지스럽다. 예수가 자신의 능력을 나중에 재림해서 보여주겠다고 한 것은 불량배로부터 두들겨 맞고 있는 친구에게 지금은 무술실력이 없어서 보호해주지 못하지만 대신에 의술을 공부해서 나중에 치료해줄 터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두들겨 맞고 있으라는 것과 같다. 전지전능하다는 것은 나중에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호해주는 것이며,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보호해줄 일조차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진정한 전지전능이다.

6일 만에 거대한 우주를 모두 창조한 전능한 하나님이 거대한 우주 속의 한 점에 불과한 조그마한 지구를 개조하려고 왜 답답하게 여자의 자궁 속에서 10개월을 보내고 다시 인고의 30년간을 기다린 후에 또 다시 3년 동안을 일했는데 그래도 못 다한 일이 있어서 속히 다시 오겠다고 해놓고 왜 2,000년이 넘도록 오지 않는 걸까? 조물주가 속히 재림할 형편이 안 되면 자기 대신에 천사를 올림픽 개막전이나 월드컵 결승전을 행하는 곳에 공개적으로 나타나게 해서 예수의 재림을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전해주면 온 인류가 스스로 기독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예수가 굳이 재림하지 않아도 주기도문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세상은 평화로워질 터인데 왜 그렇게 쉬운 일을 하지 않고 있을까?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길몽 zongfa5003@gmail.com

<저작권자 © 불교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side_ad1
ad29

인기기사

포토

1 2 3
set_P1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