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2607주년 부처님되신날(2019 성도재일) 설법
[전문] 2607주년 부처님되신날(2019 성도재일) 설법
  • 무상 법현 스님 열린선원장
  • 승인 2019.01.14 09:2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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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이 성도절,부처님 되신 날 입니다. 부처님 되신 지가 얼마나 됐다고요? 2607년 된 겁니다. 올해가 불기 2563년인데 35살에 깨달음을 얻어 45년 동안 사셨습니다. 그러니까 둘을 더해야 깨달음의 햇수가 나온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 열반하신 해를 기준으로 하기에 그렇지요. 그런 계산법을 가지고 행사를 하고, 기리는 절은 열린선원 뿐이어서 왜 저렇게 쓰는가 생각 하실 거예요. 다만 어떻게 하더라도, 그건 우리들의 계산법이고, 우리들의 생각일 뿐 법칙은 아닙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날, 부처님이 되신 날, 도를 이루신날, 성도절이라 합니다. 오늘 12월 8일도 정해진 것은 아니지요. 다만 지역과 나라의 음력 계산법이 달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이죠. 예수탄생을 축하의 날입니다. 태어난 날도 아닌데 말이죠. 동짓날이랑 가까워서 동짓날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탄생일이 아니고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을 축하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양력 계산도, 음력 계산도 사람이 했어요. 요즘은 교수님 따로 있고, 선생님 따로 있고, 목사님 신부님 스님 따로 있어도 뭐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보다, 교수님보다 검색을 빨리하는 아이들이 지식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할아버지선생님은 핸드폰이나 컴퓨터보다 더 빠르고 민활한 정보 검색을 못하기 때문에 용량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영어선생님을 만났더니 초등학교 중학교 초반부까지만 해도 우리가 가르칠 수 있지만 그 이상을 가르치기가 어렵다는 말들을 해요. 이유는 발음 문제랍니다. 즉 원어민 교사들이 잘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 가르친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정립되고 있습니다. 검색을 넘어 편집의 시대라는 것이지요.

지금은 젊은 스님과 젊은 목사님과,젊은 신부님...등 사회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알 수도 있는 시절입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젊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이 몇 가지 있었어요. 그 하나가 지식입니다. 읽은 양 만큼 지식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불교를 통해서 앎과 슬기, 지혜는 다른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앎은 지식으로만 떨어지는 게 아니지요. 앎이 열 가지라면 열 가지 다 아는 사람은 절대로 슬기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어 뜻을 조금 안 것을 아는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지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구분하지요. 아는 것과 슬기로운 것은 다르고, 학위를 받은 사람과 슬기로운 건 다르다고 합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제대로 알지 않으면 학위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제대로 아는 것은 슬기로운 것이고,지혜로운 것입니다. 제대로 아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젊은 사람을 전제로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연세 많으신 분들이 지식이 많고 슬기롭습니다. 슬기로운 사람들은 “야~~~” 이런 발음은 잘 하지 않지요. 저도 보기를 들기 위해서 이런 표현을 했지요. 지금 나이가 얼만데 “야~~~”라니. 그것을 아는 사람이 슬기로운 것이지 모르는 사람이 슬기로운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덕이 있다는 거죠. 덕이 있다는 것은 배려한다는 것이죠. 배려를 자기한테 먼저 하고,자기하고 관련된 존재들에게 합니다.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보니까 ‘자기한테야 당연히 하는 건데 그걸 이야기 하느냐, 다른 분들 다른 존재한테 하는 것을 이야기 하지’ 이렇게 이해하기 쉽죠. 자기 자신한테 먼저 한 것이 뭐냐. 깨달음이죠. 어떻게 살아도 살아있는 존재는 괴롭잖아요. 괴로움을 없애려면 죽어야죠. 죽으면 끝나면 좋은데, 사실 끝났는지 안 끝났는지 잘 모르지만 안 끝났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열반이라고도, 깨달음이라고도 합니다. 꽃이 피는데 봄이 되니 또 피어요. 하지만 그 꽃은 그 꽃이 아니지요.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지 밉다고 합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마르거나 떨어지면 우리의 눈이 별로 가지 않지요. 꽃이 예쁜 게 아니야. 썩은 꽃, 고개를 돌립니다. 태어나면 썩는 것의 시작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죠. 태어나지 않으면 괴로움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지요. 꽃 중에 태어나지 않는 꽃이 있다네요? 아셔요? 꽃이 없는 과일이죠. 꽃이 없는 과일이 아닌데, 못 봐서 꽃 없는 과일이라고 생각하는 무화과죠. 많은 사람이 봤다고 하고, 모르는 사람은 못 봤다는 거예요. 나중에 봤다는 사람이 어쩌다가 한번 나오네요? 그래서 삼천년 만에 한번 핀다더라. 무화과 같은 것이 바로 우담바라예요.

인터넷이나 이런 곳에 보면 백년 만에 한번 피는 꽃들이 몇 가지 있어요. 대나무꽃, 고구마꽃... 보셨죠? 그거 대나무 꽃이 아닙니다. 대나무꽃은 백년 만에 피지 않고 자주 핍니다. 벼꽃 비슷하게 생겼어요. 예쁘게 피어 있는 것, 이거 대나무꽃 아니예요. 다른 꽃인데, 누군가가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그렇게 한 거예요. 본인도 모르니까. 또 고구마꽃이 백년에 한번 핀다고 이야기하죠. 키워본 사람은 압니다. 고구마는 한번 심으면 씨가 썩어버려요. 그래서 새 고구마가 나와요. 인연될 고구마가 없어요. 대개 고구마 심어서 새 고구마 나는 것 보다는 고무마 잎 심어서 새 고구마 나는 게 많죠. 백년이 가는 고구마가 없어요. 기본을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건데도 놀랍니다. 현재 우리는 어머나 그렇게도 잘 못하죠. 그런 것들이 우리가 제대로 살피지 못한 탓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당신이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어 보니까 아하 다시는 안 태어난다 하는 것을 아신 거예요. 사자는 다른 짐승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진 않는다. 그 몸속에서 나오는 벌레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사자신중충이라 합니다. 쇠는 부러지거나 녹슬지 않는다. 없어지지 않는다. 속에서 나온 녹으로 부러진다. 이런 말이 있죠. 부처님 경전에 나온 말입니다. 경전에 나온 말인데 백 프로 믿을 만한가요? 녹은 어디서 생기나요? 산소를 만났을 때 생기는 것이 녹이예요. 안에서 생기든 밖에서 생기든, 부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셨든,  부처님 제자들이 그렇게 생각하셨든 반드시 자연과학적 사실을 다 쓴 것은 아닙니다. 따져,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깨달았느냐. 내가 다시 윤회하는 삶, 괴로움의 시작인 태어남을 다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신 거예요. 태어나지 않으면 괴로움이 없어, 괴로움이 없으면 즐겁다고 본다. 그것을 열반이라 하는 것이고. 일단 안 태어나면 괴로움이 시작되지 않으니까 즐거움이 지속 된다 보는 것이죠. 그걸 했더니 즐거움이 시작되고 남들한테 알려주었더니 그분들도 됐어. 그러니까 전파하는 것인데. 실제로 우리 경전에 보면 1250아라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첫 제자 다섯 명을 얻었고, 그런 다음 55명을 얻었고 그리고 얼마후 다섯 삼형제가 오백 명, 이백 명, 삼백 명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들을 교화함으로 인해 천명이 됐어요. 또 다른 이백 명 해서 1,250명 만드는 데는 3년도 채 안 걸렸어요. 그리고 42년을 더 설법하셨는데 우리가 믿고 있는 사람들은 아라한이 1,250명 내지는 더 많이 했다고 한들 2천명일거 아닙니까? 그 정도의 인물들을 믿고 있는 거예요. 실제로는 더 많이 됐어야 맞죠. 경에 기록이 안됐다라고 볼 수 있어요. 기록 숫자를 다 모아도 2천명이 안돼요.지금 현재까지 부처님 열반하신지 2563년이 됐는데 지금까지 또 수행한 사람들의 아라한이 얼마나 나왔을까요? 입증이 안돼요.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이지만 테라와다불교가 초기불교는 아닙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신지 한참 후에 백년도 지나 부파불교시대가 오던 때 그 부파불교 중에 어른불교가 인도말로 테라와다, 즉 장로불교죠. 어른불교가 있으면 젊은 불교도 있을 수 있지요. 아, 뭐가 있어. 아니 없어. 이런 걸 따지는 부파들이 있었어요. 보통 불교와 어른불교가 둘로 나뉘었다가 어른 불교는 잘 나누어지지 않아요. 현 사회에서도 어른들은 잘 변화가 안돼요. 애들은 변화가 많아 편을 하나로 만들기가 어려워요. 대중불교는 18개로 나눠졌다고 불교 교단사에서 이야기 합니다. ‘그 18개는 여러 개고 그중에 어른불교가 테라와다이다. 그래서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그렇게 믿고 따르고 있지만 그런 믿음에 있어서 2천명 아라한이 됐거나 안됐거나 하는 입장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잘 전해온 것도 또한 사실이지만 현재 우리가 믿고 따르는 데는 한편 어려움이 있더라. 더 좀 남들한테 좋은 영향을 미치는 불교로 가면 어떠냐. 아. 사랑을 많이 실천하면 좋겠다. 남을 이롭게 하는 삶, 봉사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라고. 갑자기 봉사라고 하면 불교인가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요?

기준을 정하는 데는 부처님말씀과 부처님 삶과 부처님의 전생개념이 들어갑니다. 부처님의 전생을 생명이 있었던 때라고 해서 자타카, 본생담이라고 합니다. 이 본생담에 나오는 전생을 보살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전생만을 보살이라고 했었는데, 부처님만이 싯다르타만이 부처님 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의미가 있을까요? 의미가 없거나 적겠지요. 누구나 될 수 있어야지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것이 보살사상입니다. 그 보살은 부처님이 아니잖아요.부처님이 아니라면 누구든지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보살이 부처가 됐으니까요.

부처님의 전생에 어떤 실천을 했을까요? 예를 들면 부처님이 어렸을 때 사냥을 갔는데 친구인 왕자중에 한 사람이 데와닷다, 부처님의 사촌동생인 그가 화살로 날아가는 백조를 쏘았다죠. 지나가던 싯다르타가 보고 화살을 뽑고 치료를 합니다. 데와닷다가 와서 ‘그거 내꺼야 이리 줘. 내 것이라면 아껴야 해. 주인이라면 사랑해야 돼. 아끼지도 사랑하지도 않으면 주인이 될수 없어.’라 이야기를주고 받지요. 부처님이 아니었을 그 이야기를 확장시켜 전생담으로 꾸며진 것이 ‘자타카, 본생담, 전생담’이라 그래요. 한자로 본생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본이잖아요. 그 주변이 근본이 있으면 지말이 있다고, 곁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전생이 근본이면 현생 내생을 곁가지라고 봅니다. 느낌이 있는 거죠. 그 본생 때 어떻게 살았느냐? 사랑했다, 슬퍼했다, 기뻐했다, 평온했다, 자비희사라 이야기하고, 줄여서 자비라고 합니다. 사랑, 인도말로 메따라고 합니다. 슬픔 까루나, 기쁨 무디따, 사는 뭐냐, 평온 평등 고요한 거예요. 우뻬까라고 해요. 아들 다섯 명 낳는 사람 있지요? 첫애 둘째...다섯째까지 낳을 때 첫째아이 낳을 때 행복하지요. 우리애가 서울대가면 기쁜데 남의 아이가 서울대가면 기분 나쁘지요. 그런데 우리아이가 잘 되서 기뻤던 걸 상상한다면 남의 아이가 잘 되도 기뻐요. 그것을 평온, 평등이라 이야기 합니다. 자비희사를 부처님이 전생 때 실천했습니다.

자를 실천한 최고가 관세음보살입니다. 비는 “야, 공부해라” 옛날엔 그랬어요. 국어, 영어, 수학 풀 줄만 알았어요. 요즘엔 유명한 가수나 운동선수가 절에 간다면 애들이 따라 몰려들어요. 절과 교회와 성당에서 그런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유치전쟁까지도 있는 현상이예요. 그들을 교화하지를 못해. 요즘 유명한 탤런트는 즐겁게 살기도 하죠. 하지만 살펴보면 매우 힘들게 훈련하고, 연습하고, 오디션을 거치고 나서도 다 그렇게 살잖아요. 그 사람들의 부모님들은 매일 기쁠까요? 그런데다가 여러 가지 사건이 많잖아요? 그들의 어머니고 그들의 아들딸이고, 그런 걸 봤을 때, 우리는 저런 걸 당하지 말아야 하는데, 에이 기분 나쁘지만 우리가 가서 끝까지 보듬어주고 아껴줍니까? 못해주지요. 그렇게 해주는 엄마, 해주는 자원봉사자가 있다면 그들이 바로 지장보살님이죠. 지장보살님은 지옥이라는 게 정말 있는 줄 모르지만 지옥에서 고생하고 있는 중생들이 다 빠져나와서 해탈 할때까지 자기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하는 분이지요. 우리가 쓰나미를 겪은 적이 없지만, 태안유출 사고 났을 때 자기들이 뻘밭에 들어가서 기름 걷어내고 했지요. 냄새 심하고, 지장보살님이 그런 분이예요. 그런 분들이 지장보살이예요. 이렇게 보살님들의 역할이 커진 것, 그것이 대승불교입니다. 일정부분은 맞는 것 같다. 일정부분은 아니다. 우리집 아저씨가 대학 교수다보니까 벽에 못 박는 것 잘 못하면 이웃집 아저씨 모셔와 못 박는 일 할 수가 있잖아요? 그렇게 하다보니까 다른 종교의 사고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들을 초기불교라고 생각하면서 테라와다불교를 하는 분들은 불교가 아니라고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같은 불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집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고 아들딸들이 있어요. 쟤는 누굴 닮아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해요. 누굴 닮겠어요? 어머니 아버지 닮았지.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결과가 있어요. 멘델의 유전법칙을 보면 대개는 아들은 아버지의 열성 유전자를 물려받고 딸에게는 엄마의 열성 유전자를 물려받는다. 이성인 딸은 아버지의 우성 유전자가 물려가고, 아들에겐 엄마의 우성 유전자가 물려간대요. 그것도 백 프로가 아닌 네 개중에 세 개가 그렇고 한 개는 아닌 거예요. 다음 대에 내려가면 또 달라집니다. 그게 자연과학의 법칙입니다. 그 법칙을 불교 안에서 삶 안에서 분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과학을 하려면 DNA검사하고 복잡하니까. 우리 스스로가 그런 것을 불교적으로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아들딸에게 뭔가 문제가 있으면 나한테 없었는가를 살펴보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런 것을 공부하는 것이 불교라는 걸 기억하셔요.

부처님이 29세에 출가했습니다. 6년 동안 수행을 했죠. 저 모습 보이지요? 고행상입니다.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에 모셔져 있는 것입니다. 스탄, 몽골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몽골 영향은 불교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지역이 다 불교였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탄, 스탄이 들어있는 그런 이름의 나라들, 거기를 거쳐서 중국을 거쳐서 우리나라로 오기도 했고 직접 온 것도 있고, 불교가 들어온 겁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직접 온 것도 있을까요? 우리나라에 불교가 맨 처음 들어온 게 언제일까요? AD라고 알고 계시는 CE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불교가 처음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삼론종이라는 종파가 있었고 거기의 스승이 승랑이라는 스님입니다. 중국에는 당시에 삼론종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한국에 먼저 있었단 말이냐고 주장을 합니다. 사실일 수 있습니다만, 인도나 유럽에서 동쪽으로 오는 길이 옛날에 몇 개의 길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두 개의 유명한 길은 실크로드와 그린로드, 비단길과 초원길이지요? 어느 길이 가기에 좋을까요? 초원길이 가기 좋습니다. 어디나 좋은 게 있으면 안 좋은 게 있죠.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물건들이 많다보니 강도가 많을 수 있지요. 물건도 빼앗기고 목숨도 빼앗기니 아주 험난한 길 바윗길로 비단을 나르다 보니 비단길이라 불렀어요. 중국의 예쁜 여자가 많았겠지만 유명한 예쁜 여자가 있었답니다. 세 여자는 나라를 망하게 하고 한 여자만 나라를 돕는 일을 했지요. 왕소군, 흉노족의 임금인 선우한테 잡혀갑니다. 나라를 봐달라고 왕소군을 보낸 것이죠. 갔는데 거기는 실크로드였습니다. 봄이 왔는데 꽃도 안 피고 봄 같지 않아요.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말이 거기서 생긴 말이지요. 초원길은 법현 스님도 실크로드를 거쳐 인도를 갔다가 스리랑카 거쳐 중국을 와서 불국기라는 책을 씁니다. 우리나라 혜초 스님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옵니다. 혜초 스님도 글을 쓰죠. 왕오천축국전. 가도 가도 사막이도 사람도 없고 길도 못 찾고 있는데 이정표는 나를 앞선 해골들이었다. 그렇게 힘든 곳을 비단이 오고 간 것이죠. 이유는 도둑이나 강도에게 빼앗기는 것보다 이쪽이 나으니까. 나에게 힘든 길은 그들에게도 힘드니까. 초원길이란 무엇이냐. 말을 타고 열심히 달리면 로마에서 장안까지 오는데 짧게는 15일 길게는 20일이면 올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중국 위쪽을 관통해서 고구려까지 옵니다. 역사를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고 안 믿는 사람이 있는데 북한은 지금 북한의 일부를 북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시베리아까지 고구려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요. 뭐가 됐든 간에 그 쪽이 고구려라고 본다면 먼저 중국을 거치지 않고 한국에 왔을 수도 있다는 게 승랑을 연구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온 역사가 있고 고구려 소수림왕 2년 만은 아니라는 것. 남해 지금 말하는 김해 가락, 가야를 통해서 온 불교가 있고, 동해안으로 배가 와서 금강산으로 들어온 이야기가 있어요. 전설만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어요.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은 역사학자들,불교학자들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부처님의 길을 따라가 보자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길은 초기 불교, 테라와다불교에서는 안 태어나는 걸 목표로 한다. 태어날지 안 태어날지 확실히 모르지만 어차피 태어난다면 누군가한테 도움 되는 삶을 사는 게 좋은게 아닌가 라는 것이 대승불교, 마하야나의 보살사상입니다. 그러다보니까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등 여러 보살사상이 생기고 석가모니 부처님만 계신줄 알았더니 니까야에도 여러 부처님 28분이 나타납니다. 즉 초기불교 경이라고 하는 실제로는 테라와다 종파의 태고종 조계종 천태종 진각종에서 읽는 경의 실제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태고종은 금강경 화엄경 전등록 하고, 조계종은 금강경 전등록 하고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근래에는 조금씩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냐면 초기 경전을 배우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옛날 분들은 기초로 다 배운 다음에 이것이 좋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것만 배우고 있다는 어려움이 있어요. 혹시라도 저를 만난 분들은 좀 낫지만 만나지 못한 처음이라면 금강경 반야심경 법화경 화엄경 능엄경 원각경 이런 경들은 아주 후대에 생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불설이라고 되어있지만 그런 경전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현 스님보다 더 많이 알았을까요, 법현 스님이 석가모니보다 더 많이 알았을까요? 옛날에 그분들이 알았을 정보량이 있고 그분이 훌륭한 것은 많이 안 것이 아니고 제대로 안 것이예요. 제대로 안 것의 최고는 괴로움의 시작인 태어남이 없음을 자기가 확실하게 알고 안 태어난 것이 고타마싯다르타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대로 아신 것입니다. 한국말이든 영어든 당연히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훨씬 많이 알죠. 그러면 법현불이 나올 수 있어요. 이상한 사이비처럼 되니까 제가 스스로를 말하는 것은 곤란하지만요. 실제로 그렇게 보고 동방에는 해가 뜬다, 밝다 밝으면 안 아프고 덜 아프다 그러면 그분이 치료하는 부처님이 되지 않겠냐. 이것이 약사여래사상이죠. 해가 뜨니까 좋은데 머리위에 있으니 너무 더워, 인도 더워, 스탄도 더워요. 밤에는 너무 춥지만 낮엔 환장하게 더워요. 그 더운 곳은 인도 섭씨40도가 보통이요. 50도가 넘어 갈 때가 있어요. 죽은 사람이 많아. 옛날에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물 뿌려 주고 우산 씌워주니까 덜 죽어. 지금 인도가 바뀌고 있어요. 이제는 안 죽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인도가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면 아주 더운데 부처님이 수행을 나무 밑에서 했어요. 더워서. 나무 밑에는 시원하니까요. 그 때 공부하는 거죠. 보통 공부가 힘들다고 하는데 공부 잘하는 사람은 공부가 제일 쉽다. 석가모니가 중국 러시아 미국 대통령 아들이라면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 당시 중인도 지역의 16개 나라 중 거의 제일 작은 나라의 왕의 아들이었죠. 서울에도 서초구청장이나 강남구청장이나 이런 쪽 아들이면 좋은데 은평구청장은 다르죠. 은평구가 서울 25개 중에 제정자립도가 가장 낮대요. 그런데 적십자 회비 납부는 제일 높아요. 사랑이 가장 많은 거죠. 사람들이 사랑도 많고 구청장도 노력하겠죠. 실질적으로 우리가 옛날에는 가난해서 먹을 것 조금만 주면 많이 고마워했고 옷도 떨어진 것 주면 고마워했는데 지금은 어때요? 안 고마워요. 저는 제자들이 놓고 간 옷을 입을 수 있어요. 오래된 사람이라서요. 그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해만 넘어가면 시원해요. 해가 넘어가는 쪽에 시원한 게 있어 좋은 게 있어요. 인생 자체가 어려운데 인생이 끝나는데 좋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서방정토극락세계입니다. 그렇게 남쪽에도 북쪽에도.. 북쪽에 있는 무우세계, 근심이 없어요. 이렇게 타방부처님들이 생겨납니다.

카렌 암스트롱이라는 수녀출신 신학자, 종교학자가 쓴 커다란 전환점이라는 뜻의 <The Great Turning Point>라는 책이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축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옮겨졌지요. 거기에 부처님 이야기도 나옵니다. 사람들이 축을 발명하면서 많은 량의 사람과 물건을 한꺼번에 옮기는 문명의 대전환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어떤 지도자가 있느냐는 것이 그 책의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누군가 절대자가 짐을 날라주듯 건져주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건지는 방법을 일러줘서 스스로 실천하다보면 때가 되면 한꺼번에 자기가 자기를 건진다고 하지요. ‘이게 불교의 기본 원리다. 그것을 안 위대한 사람이 석가모니다. 최고의 방법론으로 팔정도를 개발하고 퍼트렸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부처님 되신 날을 기념하고 부처님 돼 보려고 하는 이유가 내가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할 수 있다고 가르쳐준 사람이 부처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 제대로 따라가면서 부처님 방법을 익혀봅시다. 부처님 방법이 당시에는 이사람 저사람 따라서 했지만 위파사나 관찰법을 통해 부처님이 되신 겁니다. 몸과 마음을 고요히 가지런히 하는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관찰이 제대로 됩니다. 호흡을 살피거나 느낌을 살피거나 이런 걸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리고 나서 법칙을 살펴보면 법칙이 보입니다. 차를 몰고 가다가 접촉이 났어요. 우리는 사고라고 말하지만 접촉현상입니다. 부딪칠만한 상황이 됐을 때 부딪치는 거고 그런 상황이 아니면 안 부딪치는 거잖아요. 사고든 사고가 아니든 현상일 따름인데 안 날줄 알았는데 났다고 생각하는 게 사고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런 것을 아는, 현재 우리가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고라고 볼 것인가 현상이라고 볼 것인가 판단하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공부입니다. 그래서 첫 시간은 호흡선, 숨살핌선을 할 것입니다. 인도어 아나빠나사띠라고 하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긴 이야기를 무엇을 통해서 했습니까? 말씀을 통해서 전달했지요? 이해가 되도록 설명했습니까? 문장의 뜻, 단어의 개념을 설명하느라 길어졌지요? 이렇게 우리 나라말을 가지고 우리나라사람 그 가운데에도 불교정서를 가진 분들에게 이야기 했는데도 쉽지 않지요. 지역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다면 더 어렵겠지요. 같다고 할 지라도 나이, 학력, 성향, 종교 등이 다르면 더더욱 어렵습니다. 말씀 속에 들어있는 제 뜻, 본 뜻, 행간에 숨어 있는 뜻을 살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야말로 살고 죽는 것이 달려있기도 합니다. 행,불행이 달려있지요.

그래서 말씀을 주제로 명상, 참선하는 것이 말씀참선 즉, 간화선입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말씀참선을 하기로 합니다.
참선 마치고 싯다르타가 먹었던 유미죽과 같은 잣죽,호박죽을 먹고 마칩니다.

2019.1.13. 열린선원 선원장 무상법현스님(나가노 금강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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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현 2019-01-14 20:06:41
아!
불교님 고맙습니다.
제가 착각했군요.
왕소군으로 교정했습니다.

불교 2019-01-14 11:47:25
4대명절인 탄생, 출가, 성도, 열반 중에서 굳이 따지자면 성도절이 가장 의미있는 날이지요~ 깨닫지 못하셨다면 불교도 없었을테니까요. 보통 절에서 쉽게 넘겨버리는 성도절을 잊지 않고 꼭 챙겨서 기념하는 법현스님의 가르침에 한표 던집니다.^^ 법문 또한 일품이구요~~ 쉽고 재밌고 유익한 법문이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옥의 티를 굳이 찾자면 흉노족에 시집간 4대미녀는 초선이 아니라 왕소군입니다. 머리좋으신 법현스님도 가끔 착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ㅎㅎ. 늘 좋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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