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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쇠부텨’서 진여를 드러내다

기사승인 2019.01.22  16: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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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의 법문] ④ 진철문-사유(思惟)하는 철문(哲文)

사람을 위해 살던 쇠

#1. 나는 ‘쇠(鐵)’다. 태어나다 보니 나는 쇠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이 땅에 나길 그렇게 태어났다. 엄밀히 말하면 여러 광석들과 섞여 살다 용광로에 녹여져 쇠로 태어났다. 사람들이 나를 쇠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뜨거운 불에 집어넣어 녹이고 식힘을 반복하고, 필요한 형태로 주물러져, 음식을 끓이는 가스버너가 되었다.

이름은 없었다. 그저 가스버너의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배고파 찾을 때면 내 몸 빈 공간을 통해 밀려온 가스에 주인은 불을 붙였다. 불이 붙을 때면 검던 내 몸은 달궈져 벌겋게 변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버너 부품이 된 게 자랑스러웠다. 사람들의 허기를 채우려면 내가 없어서는 곤란했다. 밥을 익히더라도 나와 같은 쇠가 아니면 곤란했다. 나무는 불을 견디기 힘들었고, 돌은 모양을 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녹여서 어떤 모양이든 만들 수 있는 우리 쇠들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우리 쇠를 다루는 솜씨를 나날이 발전시키며 그들의 발전사를 한 줄씩 써나갔다. |

쇠로 태어나, 나는 고향을 모른다. 지금의 모양이 나온 것은 어느 공장에서다. 뜨거운 불에 녹여져 금형에 부어 식힌 다음 내가 나왔다. 그때부터 내 이름은 가스버너 노즐이었다. 가스버너 노즐은 사람들이 붙여 놓은 이름이었다. 어찌 보면 쇠로 태어난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아무런 관련 없는 가스버너로 난 십 수 년을 살았다. 사람들의 밥을 해주고, 국을 끓여주는 가스버너 노즐로 살았다. 나는 사람들을 위해 살던 쇠였다.

   
 

금강계·태장계 만다라

#2. 내 이름은 ‘만다라’이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내 앞에 ‘만다라’라는 표식이 붙어 있었다. 자세히 말하면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만다라의 광배(光背)였다. 나와 한 몸인 쇠부처(鐵佛)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가스버너 노즐이었던 나와 내 친구 다른 가스버너 노즐은 금강계와 태장계 만다라란 이름의 부처 뒤에 광배로 붙여졌다. 친구 가스버너 노즐과 붙은 쇠부처도 누군지 알 수 없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사실 쇠붙이가 어디서 왔는지 알 필요는 없다.

쇠부처는 다른 쇠를 받던 금형이었고, 망치였다. 어떤 쇠를 모양내던 금형인지, 어떤 물건을 두드려대던 망치였는지 나는 모른다. 어쨌든 나는 금형과 망치와 함께 지금은 만다라이다. 우리를(가스버너 노즐과 금형과 망치) 받친 것도 쇠다. 하지만 연원을 알지 못한다. 사람을 위해 쓰였다는 것은 공통이지만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만다라가 된 이유는 백화점(나를 만다라로 만든 진철문이라는 예술가는 고물상을 백화점이라 불렀다.)에서 한 사람의 눈에 띠었기 때문이다. ‘백화점 쇼핑’을 나온 이상한 사람에게 나는 선택됐다. 그때까지 나는 그냥 가스버너 노즐이었고, 쇠였다. 금형도, 망치도, 이름 모를 쇠판도 백화점에서 간택됐다. 사람들의 쓸모에 맞게 만들어졌다, 부식되고 금이 가자 우리는 고물상에 팔려왔다. 무게를 달아가며 망태기에 담겨졌다가 고물상 한 귀퉁이에 던져졌다. 그때까지 우리는 모두 갈 곳은 용광로 밖에 없다고 여겼었다. 비바람에 쓸려 녹이 온 몸에 생길 때까지 우리는 가스버너 노즐, 망치, 쇠판이란 이름을 잃고 그저 쇠로 지냈다.

#3. 내 이름은 ‘참선’이다. 날 때는 쇠였고 한 때 이름은 ‘삽’이었다. 평생 땅을 이루었다. 나무 자루에 끼워져 매일 땅을 파고 고르는 일을 했다. 평생 사람들에게 쉴 터를 닦아주고, 곡식을 담던 쇠였다. 내가 ‘참선’이 된 건 기찻길 침목을 고이던 ‘나사못’과 함께이다. ‘너트’도 참선이고, ‘베어링’도 참선이다. 엄밀히 말하면 삽과 못과 너트와 베어링이 참선이다. 사람들을 위해, 남을 위해 일만 하던 낡고 닳은 그 모습 자체가 참선이다.

#4. 제 몫을 다한 후 버려진, 삭고 쓸모없어진 것들의 틈에서 부처를 만났다. 얼마나 일했을까? 얼마나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을까? 닳은 만큼, 일,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버려졌겠지. 생을 다한, 목숨을 다한, 사람들로부터 이용가치가 없어진 쇠붙이지만 불성은 버리는 인간보다, 할 일을 다 한 쇠붙이에게 있었다. 영겁의 세월동안 온 우주를 떠돌다 사람 손에 제련돼 쓸모 있게 살다 버려진 쇠붙이의 삶은 선사들의 이타행을 닮았고 보살의 행과 맞닿았다. 처염상정(處染常淨), 더러운 흙탕물 속에서 피어나지만 오염되지 않고 청정한 연꽃을 나는 백화점(고물상)에서 만났다. 나는 쇠붙이에게서 부처를 보았다. 부처님의 광배도 찾았다. 용도 폐기된 쇠를 붙이면 불성이 드러날 듯하다. 참선중인 구참 구행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대가 모여 몸뚱이를 이루듯, 형(形)을 모아 부처를 드러낸다. 돌로 만든 부처는 석공을 이기지 못하고, 쇠로 만든 부처는 용광로를 이기지 못하고, 흙으로 만든 부처는 물을 이기지 못한다. 깎거나 쪼아 새로운 모습을 만들지 않는다. 그저 쇠를 붙여 진여(眞如)를 드러낸다. 삽은 그저 삽이 아니고, 가스버너 노즐 역시 그저 쇠붙이가 아니다. ‘참선’하는 수행자를 닮은 삽은 그대로가 근면하고, 삽자루 작은 팔은 그대로 장삼에 넣는다. 깨진 쇠 삽은 수행의 깊이와 삶의 궤적을 드러낸다. 노동의 흔적은 그대로 보살행이다.

선(禪)이란 무엇인가? 선의 가르침은 모방을 깨뜨리는 것이다.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부처를 만나러 백화점 쇼핑에 나선다.

   
 

외강한 몸에서 내유를 캐다

#5. 얼마나 봉사를 했을까? 그 닳은 만큼 제 몫을 다했을 것이다. 기나긴 업의 고리를 끊고 영겁의 선정에 들어있다. 묵고 닳은 그만큼이 수선의 모습이다. 야전점퍼에 등산화를 신고 헤매던 발바닥의 굳은살만큼, 부르튼 손바닥의 갈라짐만큼 돌아다녀 찾는 ‘부처를 부쳐 부처’를 드러낸 ‘사유(思惟)하는 철문(鐵文)’을 만났다.

평생 농부의 손에서 밭을 일구던 닳고 닳은 삽이 부처로 화현한 것은 자격 있다. 버너 노즐 광배며 제품을 찍어내는 기계틀이 대일여래(大日如來)로, 짐을 매달던 고리가 사유하는 불두(佛頭)로, 포클레인의 발톱과 시계추 저울추가 손과 발이 되어 부처의 움직임이 되었다. 자동차 축, 난로 뚜껑, 재받이, 톱 등등을 적재적소에서 부쳐 부처를 드러낸다. 명(질)이 다하고 색(몸)이 다했다고 여겼는데 철문은 쓸모없어진 뒤에야 본성을 드러내 부드러운, 온화한 명색을 살렸다. 외강(外强)한 몸에서 내유(內柔)를 캐냈다. 쇠의 색과 광은 반사와 비춤(照)으로, 돌과는 성질이 다르다. 삽, 고리, 버너, 바퀴 들이 철문의 손을 거쳐 생명을 얻었다. 쇠부처의 진여(眞如)는 철문의 본성을 닮았다.‘사유하는 철문’의 진철문은 ‘쇠부텨(鐵佛)’를 관조한다. 참선하는 쇠부텨 역시 철문의 수행과정을 맞닿았다. 폐철(廢撤)된 폐철(廢鐵)에서 찾은 부처는 휴식, 곧 적정열반(寂靜涅槃)에 있다. 내 이름은 강순형,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다. ‘사유(思惟)하는 철문(鐵文)’을 만났다. 2009.09.04.

■진철문은 1979년 불교계 종립대학교 동국대학교 미술학과를 나왔다. 83년같은 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가 됐다. 같은 대학 문화예술대학원에 출강하면서 같은 학교 불교대학 선학과에서 〈불교 조형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공모전 그룹전 초대전 등 100여 회 전시, 출품했다. 쇠, 돌, 나무에서 진여를 찾는다. 그 결과 7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 경기도 용인의 토굴에서 정진중이며, 가끔 중절모에 점퍼를 입고 이곳저곳 ‘백화점 쇼핑’도 다닌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서현욱 기자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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