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서는 ‘눈’, 공약삼장은 ‘눈동자’
선언서는 ‘눈’, 공약삼장은 ‘눈동자’
  • 선리연구원
  • 승인 2019.05.1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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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3. 1독립운동에 있어서 독립선언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며, 3·1운동의 정신은 ‘독립선언서’의 말미에 나오는 ‘공약삼장(公約三章)’으로 압축된다고 말할 수 있다.

공약삼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 김상현 교수는 “선언서가 눈이라면 짤막한 이 공약삼장은 눈동자다”라며 “눈동자가 있어 눈을 눈답게 하듯, 공약삼장이 있어서 독립선언서가 선언서다운 구실을 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공약삼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장. 금일(今日) 오인(吾人)의 차거(此擧)는 정의·인도·생존·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제2장. 최후의 일인(一人)까지 최후의 일각(一刻)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快)히 발표하라.
제3장. 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오인(吾人)의 주장과 태도로 하여금 어디까지든지 광명정대(光明正大)하라.

제1장은 ‘독립’을 민족의 요구로써 오직 자유적 정신의 발로(發露)임을 강조하고 있다. 제2장의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란 표현의 의미는 비교적 우회적이고 소극적이었던 ‘독립선언서’의 내용에 비해 보다 민족의 자주 독립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함축한 행동강령이다. 제3장의 ‘질서를 존중하라’는 주문은 곧 작금의 독립운동에서 관철된 비폭력 정신을 표방한 것이다. 이 비폭력은 독립운동에서 핵심적 특징이다.

이런 중요한 공약삼장의 작성을 두고 만해 스님에 의해 작성됐다는 것이 학계 대부분의 통설이지만, 일부 의견은 독립선언서뿐만 아니라 공약삼장도 육당 최남선이 썼다는 반론이 있었다.

문인 조용만이 1969년 3월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공약삼장’은 만해가 쓴 것이 아니라 독립선언서를 쓴 육당 최남선의 작품”이라고 처음으로 주장했다. 그 후 신용하 교수(1977), 홍일식 교수(1989) 등이 공약삼장의 작성자가 육당 최남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만해 스님이 썼다는 의견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가 ‘공약삼장’은 만해 스님이 아닌 최남선이 작성한 것이라고 다시 반박하고 나섰다. 박찬승 교수는 《1919: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출간 간담회에서 “한용운은 최린에게 독립선언서 작성을 일임한다고 했고, 최린은 선언서만은 육당이 짓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며 최남선이 초안을 쓴 뒤 첨삭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공약삼장’ 작성자에 대한 논란이 현재까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3.1 독립운동에 있어서 공약삼장의 가치가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에 마침표를 찍기보다는 다시한번 이 주장에 반론하여 역사적 정황과 증언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보삼 만해기념관 관장은 〈한용운의 3.1 독립정신(獨立精神)에 관한 일고찰(一考察)〉의 논문에서 공약삼장의 작성자에 대한 논쟁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관련일지를 정리하였는데 그 내용을 참고하여 이 글을 기술하였다.

먼저 살필 것은 민족대표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이갑성(1889-1981)이 1969년 1월 1일자 동아일보에 증언한 내용이다.

축배를 들려할 때 승려 한용운이 일어서 선언문 낭독과 조선 독립 만세를 선창, …… 그 때 민족 대표의 의기가 대단했다. …… 한용운은 대단한 인물이었어요. 독립선언서가 최남선에 의해 작성, 그 원고가 최린 댁 안방 가야금에 비밀히 숨겨져 있을 때에 선언서를 자기 손으로 쓰겠다고 버티던 옹고집이 생각나요. 끝내 공약삼장을 추서(追書)했던 그는, 마포 감옥에 수용됐던 시절에는 인원점검 때면 대답 대신 고개를 외로 꼬았어요. 

만해 스님이 독립선언서를 자기 손으로 쓰겠다고 주장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최린은 자서전에서, 최남선이 “일생을 통하여 학자생활로써 관철하려고 이미 결심한 바 있으므로 독립운동 표면에는 나서고 싶지 않으나 글을 읽는 나로써 독립선언문만은 내가 지어볼까 하는데, 그 제작 책임은 형이 져야 한다.”면서 책임 전가를 요구하였다고 했다.

그에 대해 만해 스님은 독립운동을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 선언문을 짓는 것은 불가하므로 자신이 짓겠다고 주장하였지만, 최린이 생각하기에 누가 책임을 지던 간에 선언문만은 육당이 짓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여 만해 스님의 이의를 완곡히 거절하였다고 한다.

역사적 진술과 증언들을 바탕으로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한 《독립운동사》에 3.1운동 관계기록이 나온다.

한용운은 천도교 독립선언서에 공약삼장을 추가하였으며, 3월 1일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의 연설을 하고 만세를 선창하는 등 상당한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 지금 전하는 독립선언서 뒤에 붙은 공약삼장은 한용운이 추가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약삼장의 내용에 있어서 독립선언서의 문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독립선언서가 적극성을 띠지 못한 데 비하여, 공약삼장은 적극적이고 상당히 진취적 기상이 돋보인다. 독립선언서 작성 책임을 지지 않으려던 소극적인 최남선의 모습과는 달리 제2장의 내용인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사의를 쾌히 발표하라”는 표현은 매우 적극적이고 단호하다.
또 하나 참고할 것은 두 사람의 진술이다.

문: 이 선언서에는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폭동을 선동한 것이 아닌가?
답: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선 사람은 한 사람이 남더라도 독립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문: 피고는 금후도 조선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답: 그렇다. 언제든지 그 마음을 고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몸이 없어진다면 정신만이라도 영세토록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만해 스님의 진술서 중에서)

문: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의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답: 때가 되었다고 볼 때에는 하지마는 헛되이 돌아갈 것 같으면 경솔히 하지 않겠다.
 (최남선의 진술서 중에서)

만해 스님의 답변에는 성공이나 실패에는 상관없이 독립운동 그 자체가 정당한 노력이라는 확신이 깔려 있는 반면 ‘경솔’을 들먹인 최남선에게서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사의를 쾌히 발표하라”는 문장이 나올 수 있을까.

최린이 최남선에게 독립운동을 하자고 제의하자 최남선 자신은 문학을 연구하므로 독립운동에 참가할 수 없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에조차 서명하기를 꺼려했다. 이렇게 민족의 독립에 대하여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최남선이 자주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의 표현을 담고 있는 ‘공약삼장’을 썼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동양학 교수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는 공약삼장을 〈독립선언서〉의 ‘눈동자’뿐만 아니라 “불교의 해탈, 불살생, 박애, 보편도덕주의 정신을 끝까지 지켜온 한용운이 자유 비폭력 세계주의를 골자로 하는 ‘공약삼장’의 필자였다고 보는 편이 가장 자연스럽고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정황으로 일제가 ‘독립선언서’가 아닌 ‘공약삼장’의 제2장 내용인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 ...”을 내란 죄목으로 몰아가던 재판에서 최남선에게는 징역 2년 6월을 선고한 데 비해 만해 스님을 비롯하여 손병희, 최린, 권동진, 오세창, 이종일, 이승훈, 함태영 등 3.1운동의 주역들에게만 최장기 3년형을 선고하였다.

결국 여러 가지 정황과 증언을 종합할 때, ‘공약삼장’은 만해 스님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자료>
한용운, 〈韓龍雲 取調書〉 《한용운 전집》1, 서울: 신구문화사, 1973.
김법린, 〈3.1운동과 불교〉, 《신천지》제1권 제3호, 1946. 3.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1984.
김재홍, 〈만해스님의 독립사상〉, 《불교사상》통권 제16호, 1985.
전보삼, 〈한용운의 3.1 독립정신에 관한 일고찰〉, 《한국불교문화사상사》卷下,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2.
김순석,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과 불교계의 대응〉,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윈논문, 2001.
김상웅, 《만해 한용운 평전》, 서울:시대의 창, 2006.
강미자, 《한용운의 불교개혁운동과 민족주의 운동》, 경성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7.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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