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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 자주불교는 요원한가

기사승인 2019.05.27  14: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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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기와 기념일의 불일치에 대하여

부처님오신날 행사가 지난 지 십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래 전 일처럼 느껴진다. 무엇이든지 지나가버리면 잊히는 것 같다. 나흘 전에는 ‘붓다의 날’ 행사가 있었다. 초파일의 부처님오신날과 보름날의 붓다의 날 행사를 모두 치렀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사월초파일 행사는 동아시아불교 전통에 따른 것이다. 사월초파일 행사는 언제부터 시작 되었을까? 인터넷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초파일행사의 경우 고려시대에는 관민(官民)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였고”라는 문구가 나온다. 고려사에 나오는 것이라 한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월초파일 행사는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불교의 연중행사 가운데 가장 큰 행사이다. 1975년도에는 대통령령에 의해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최근에는 연등축제와 함께 열리는 대규모 행사로 바뀌었다. 연등회 주간이 되면 외국관광객들이 축제를 보기 위해 오기도 한다.

사월초파일이 부처님오신날이 된 근거는 무엇일까? 인터넷백과사전에 따르면 ‘경(經)과 논(論)에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을 2월 8일 또는 4월 8일로 적고 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니까야’와 같은 초기경전에는 부처님이 탄생한 날자가 구체적으로 명기 되어 있지 않다. 주석서에는 명기 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음력 사월 보름달이 뜬 달을 기념행사로 개최하고 있다. 1956년 부처님 열반 2500주년을 맞이하여 부처님의 탄생, 성도, 열반을 기념하는 날로 사월보름을 정하였다. 1999년에는 유엔에서 사월보름날을 공식으로 인정하였다. 이와 같은 불기는 현재 한국불교에서도 채택하고 있다.

한국불교에서 사월초파일날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가졌다. 그런데 사월초파일은 동아시아불교전통에 따르면 부처님이 탄생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는 열반을 기준으로 한 불기 2563년과 맞지 않는다. 정확하게 계산한다면 80년을 더하여 2643년 행사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고수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사월초파일이 되면 부처님탄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부처님 탄생게라 하여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는 게송으로 표현된다. 이 게송에 대한 근거는 <수행본기경>이라 한다. 대승경전이다. 이밖에도 유사한 내용이 <서응경>에도 있다. 그러나 ‘니까야’와 같은 초기경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한 꾸시나가르 열반당 내부.(사진=이병욱).

대승불교 탄생게는 대승보살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는 “천상천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 삼계가 다 고통스러운데 내가 마땅히 그들을 편안하게 하리라.”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니까야’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어서 다르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원리가 있다. 보살은 태어나자마자 단단하게 발을 땅에 딛고 서서 북쪽으로 일곱 발을 내딛고 흰 양산에 둘러싸여 모든 방향을 바라보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임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임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선구적인 임이다. 이것은 나의 최후의 태어남이다. 나에게는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고 무리의 우두머리인 것을 선언한다. 이것이 이 경우의 원리인 것이다.” (D14)

<디가니까야> ‘비유의 큰 경’(D14)에 실려 있다. 똑같은 내용이 <맛지마니까야> ‘아주 놀랍고 예전에 없었던 것의 경’(M123)에도 실려 있다. 경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화자로 되어 있다. 부처님이 과거 전생을 회상하면서 91겁 전에 탄생한 과거칠불중의 하나인 위빠시(Vipassī)붓다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빠알리 니까야’에 따르면 위빠시붓다를 비롯하여 고따마붓다에 이르기 까지 과거칠불의 행적은 모두 동일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태어남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일하다. 이는 깨달음의 내용이 똑같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보인다. 역대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연기법으로서 모두 같은 원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승 탄생게’와 ‘빠알리 탄생게’를 비교해 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다. ‘대승 탄생게’에는 천상천하유아독존하며 “하늘 위와 하늘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라며 선언했지만, ‘빠알리 탄생게’에는 이런 말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임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임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선구적인 임이다.”라며 최상자임을 나타낸다. 이 말은 <앙굿따라니까야> ‘베란자의 경’(A8.11)에서 병아리부화 비유로 설명되어 있다.

알 낳는 것에는 순서가 있지만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 먼저 깨고 나온 병아리가 손위가 되는 것이다. 부처가 출현했다는 것은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위없이 바르고 올바른 깨달은 자, 즉 ‘정등각자’가 출현했음을 말한다. 그래서 ‘최상자’라 하는 것이다.

빠알리 게송 전체를 보면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와 전법과 열반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 더구나 “이것은 나의 최후의 태어남이다.”라 하여 이번 생이 마지막 태어남을 말한다. 또한 “나에게는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 하여 이번 생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최상자로서의 부처님은 성도를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다. 성도가 되면 전법은 이루어진다.

‘빠알리 탄생게’는 탄생, 성도, 전법, 열반이라는 네 가지 사건이 모두 성취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렇게 본다면 네 가지는 모두 최후로 성취되는 것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것이다. 그래서 사월보름날에 탄생, 성도(전법 포함), 열반을 한날에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기는 세 가지 사건 중에서 가장 나중의 열반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이런 방식은 매우 타당한 것이다. 탄생, 성도(전법 포함), 열반을 한날에 기념하는 것은 경전적 근거가 있다.

부처님의 ‘빠알리 탄생게’라 볼 수 있는 게송도 있지만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디가니까야> ‘완전한 열반의 큰 경’(D16)에서도 볼 수 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전에 네 가지 영험한 장소를 말했다. 그곳은 부처님의 탄생지, 성도지, 초전법지, 그리고 열반지이다. 이 네 가지 장소를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아난다여, 믿음 있는 수행자들, 수행녀들, 청신자들, 여자 재가신자들이. ‘여기서 여래가 태어났다.’라고,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았다.’라고, ‘여기서 여래가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렸다.’라고, ‘여기서 여래가 잔여가 없는 세계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라고, 아난다여, 누구든지 이러한 성지순례를 한다면, 그들 모두는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의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D16)

부처님은 네 가지 장소를 성지순례 하라고 했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Lumbini), 부처님이 위없는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Bodhgaya),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한 사르나트(Sarnath), 부처님이 열반에 든 꾸시나라(Kusinara, 현 꾸시나가르) 이렇게 네 곳의 성지를 말한다. 이와 같은 네 곳을 순례하며 ‘경외의 념’을 품어야 한다고 했다. 부끄럼을 수반하는 앎을 지니라는 뜻이다.

초기경전을 보면 모든 것이 명백하다. 부처님은 네 가지 사건, 즉 탄생, 성도, 전법, 열반에 대해 기념하라고 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월보름날에 탄생과 성도(전법)와 열반을 한날에 동시에 치루는 근거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동아시아불교는 오로지 탄생 하나만 기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물론 성도절과 열반절이라 하여 별도로 기념일이 있지만 근거를 찾기 힘들다.

기독교의 경우 예수가 탄생한 날을 기념하여 크리스마스라 한다. 행적이나 죽음 보다는 탄생을 더 기리는 것이다. 이처럼 탄생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은 서양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교만큼은 열반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부처님의 탄생, 성도, 열반이 각각 달라도 한날에 기념하는 것은 열반에 기준을 두고 있다. 그래서 불기는 열반부터 계산된다. 올해로 불기 2563년이라 하는 것은 탄생도 아니고 성도도 아니고 열반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런 유례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 볼 수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은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 열반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이 십바라밀을 닦아 최후로 태어난 것도 열반으로 귀결된다. 부처님이 성도하여 전법한 것도 최후의 태어남이기 때문이다. ‘빠알리 탄생게’를 보면 태어남도, 깨달음도, 전법도, 열반도 최후로 성취될 것들이다. 더구나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전에 탄생지, 성도지, 전법지, 열반지에 대하여 순례할 것을 말하고 경외의 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열반이 모든 것의 귀결임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사월보름날에 탄생, 성도, 열반을 한날에 기념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불교에서는 이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불기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열반을 기준으로 한 불기를 사용하면서 사월초파일 기념행사는 탄생만 치른다. 이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그런데 이런 모순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모순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일 줄도 모르고 계속 간다면 ‘무지’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반대로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계속 간다면 ‘위선’이라 볼 수 있다. 사월초파일 행사를 보면서 모순과 위선과 거짓을 본다. 이제 세계추세에 따라야 한다. 잘못된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더 이상 중국불교에 예속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자주불교를 실현해야 할 때이다. 현시점에서 자주불교는 요원한가?

/2019.05.22 담마다사 이병욱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이병욱/정의평화불교연대 사무총장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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