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간두진보(竿頭進步)
신무문관: 간두진보(竿頭進步)
  • 박영재 명예교수
  • 승인 2024.01.3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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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67.

성찰배경: 바로 앞글에서 임제-흥화-남원-풍혈 선사의 법을 이은 임제종(臨濟宗)의 수산성념(首山省念, 926-993) 선사께서 제창한 <무문관(無門關)> 제44칙 ‘수산죽비(首山竹篦)’ 공안과 그의 법을 이은 분양선소(汾陽善昭, 947-1024) 선사의 오도(悟道) 기연(機緣)을 다루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분양 선사께서 그의 법을 이은 석상초원(石霜楚圓, 986-1039) 선사가 하산할 때 당부한 축원과 석상 선사께서 제창한 <무문관> 제46칙 ‘간두진보(竿頭進步)’ 공안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 법안종과 임제종의 당시 교세 비교

선학(禪學)에 관해 집대성한 <선학대사전>(大修館書店, 1985)에 담긴 법계보(法系譜) 가운데 동시대를 호흡했던 법안종(法眼宗)의 창시자인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 선사와 임제종의 수산 선사가 배출한 법제자의 수를 살펴보면 법안종과 임제종의 당시 교세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먼저 법안 선사는 천태덕소(天台德韶, 891-972) 선사를 포함해 61인의 전법제자를 배출했으며, 천태 선사는 <종경록(宗鏡錄)>의 저자인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 선사를 포함해 43인을 배출했습니다. 

반면에 수산 선사는 분양 선사를 포함해 14인을 배출했으며, 분양 선사는 석상 선사를 포함해 13인을 배출했기 때문에 법안종의 교세가 당시에는 주류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칼럼을 통해 앞에서 서당지장(西堂智藏, 735-814) 선사의 사례를 들어 밝혔듯이, 역시 법안종의 경우 법안 선사께서 당대에는 매우 뛰어난 선사였으나 지속적으로 걸출한 제자들을 배출하지 못하고 몇 대(代) 지나지 않아 법맥(法脈)이 완전히 끊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다음 글에서 다루게 되겠지만 석상 선사께서 선종(禪宗)이 다섯 갈래[五宗]에서 일곱 갈래[七家]로 분파하게 되는 주역들인 임제종 양기파의 양기방회(楊岐方會, 996-1049) 선사와 황룡파의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 선사를 길러냈으며, 이들 문하에서 걸출한 제자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하면서 임제종은 이후 중국 선종의 주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 분양선소 선사의 축원

<불과극근선사심요(佛果克勤禪師心要)> 제1권 가운데 분양 선사께서 하산하는 석상초원 선사에게 당부한 ‘시원수좌(示圓首座)’란 제목의 축원문이 다음과 같이 들어 있습니다.

“자명(慈明, 석상초원 선사의 시호諡號) 스님이 분양 선사 회상에서 수행해 공부가 무르익자, 분양 선사께 작별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선사께서, ‘절을 보수하거나 새로 조성하는 일은 그때가 되면 저절로 인연 닿는 이가 있게 마련이네. 그러니 자네는 오직 불법(佛法) 선양(宣揚)의 주인공이 되도록 하여라.’라고 축원(祝願)해 주셨다.
그 후로부터 자명 선사께서는 석상산(石霜山) 숭승사(崇勝寺)를 포함해 다섯 차례나 큰 사찰에 머물렀으나 서까래[椽] 한 개조차 나르지 않고 오직 임제(臨際) 선사로부터 이어진 바른 수행 가풍家風만을 천하에 드날렸다.
마침내 자명 선사께서는 양기방회·황룡혜남·취암가진(翠巖可眞)이란 세 분의 대선사를 길러내며 그 법손(法孫)들이 천하[寰海]에 두루 퍼졌으니 결과적으로 분양 선사께서 간절히 분부하신 바를 저버리지 않은 셈이다. 모두 옛어른들은 막중한 책무를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하는데 이처럼 매우 신중하였다. 이와 같이 굳센 신앙심으로 사찰[梵苑]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은 불법에 있어서는 특별[奇特]한 일이 아니었다.”
 
◇ 신무문관: 간두진보(竿頭進步)

본칙(本則): 석상 화상께서 “백 척이나 되는 장대 끝에서 어떻게 걸어 나갈 것인가?[百尺竿頭如何進步.]”라고 제창하셨다. 또 옛 어른께서는 “비록 백척이나 되는 장대 끝[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앉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참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네. 백 척 장대 끝에서 모름지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만, 비로소 시방세계가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리라![百尺竿頭須進步 十方世界現全身.]”라고 제창하셨다.

평창(評唱):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 선사께서 “(백 척 장대 끝에서) 앞으로 걸어 나가 (중생에서 부처로) 몸을 뒤집어 탈바꿈했다면 (그런 분을) 다시 어디에 꺼릴 구석이 있어 ‘세상에서 존귀한 분[世尊]’이라고 부르지 못하겠는가! 그건 그렇다 할지라도 자[且], 일러 보아라! 백 척 장대 끝에서 어떻게 앞으로 걸어 나갈 것인가? 사!(嗄, 목이 쉴 정도로 다그치며 내는 감탄사).”라고 제창하셨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정문(頂門)의 눈을 멀게 하여/ 저울의 눈금[定盤星]을 잘못 읽게 하네./ 비록 목숨을 던져 수행했으나 아직 체득하지 못한 바(를 다른 이들에게 說하지 말게.)/ 이는 한 맹인이 뭇 맹인을 이끄는 짓이네.[瞎却頂門眼 錯認定盤星. 拌身能捨命 一盲引衆盲.]

군더더기: 여기서 옛 어른[古德]은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 선사 문하의 장사경잠(長沙景岑, ?-868) 선사를 뜻하며, 그 증거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들어있는 유사한 그의 게송은 다음과 같습니다. 
“백척이나 되는 장대 끝에 앉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참 경지에 들지 못한 것이네./ 만일 백 척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시방세계 그대로 참모습임을 알리라![百尺竿頭坐底人 雖然得入未爲眞 百尺竿頭進一步 十方世界是全身.]”
그런데 필자의 견해로는 혜개 선사께서 마지막 구에서 ‘是全身’을 ‘現全身’으로 바꾸어 그 뜻을 더욱 명료하게 밝혔다고 사료됩니다.

끝으로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 삼독三毒, 즉 탐내는 마음[貪心]과 성내는 마음[嗔心]과 어리석은 마음[癡心]에 부림을 당하며 살고 있기에, 우리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위태로운 백 척이나 되는 장대 꼭대기입니다. 특히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갈수록 우리 모두 더욱 겸허하게 마음먹지 않는다면, 각계각층을 불문하고 주변에서 끊임없이 목격되고 있듯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갑질을 밥 먹듯이 하다가 어느 때인가 반드시 자신은 물론이고 속한 공동체까지 철저히 와해(瓦解)시키게 되겠지요. 

따라서 우리 모두 날마다 틈날 때마다 자신을 되돌아보며 정신 바짝 차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행원 선사로부터 두 차례 독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편저에 <온몸으로 투과하기: 무문관>(본북, 2011),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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