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55. 부자들의 나라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55. 부자들의 나라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4.03.28 12: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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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어도.

인터넷은 커녕 전기도 없는 깊은 산속
읽는 것도 대화도 드라마 보는 것도 게임도
손 전화로 하던 이는
뭐할지 몰랐다.

추위에 떨지 않으려면
장작을 하고
배곯지 않으려면 열매 따고 사냥해야 하는데
손 전화로 주문해도 오지 않는 음식처럼
버림받은 고서처럼.
 







#작가의 변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부자들만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일한만큼 보상을 받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다.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의 보상과 땀 흘린 만큼의 아늑한 보금자리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환경인 거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부자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기업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노동자도 기업주도 다 함께 잘사는 국가를 만드는 거다. 정글의 법칙처럼 처절한 경제전쟁으로 늑대들처럼 서로 먹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는 그런 동물의 왕국같은 나라는 더욱 아니다.

농사를 짓던 시골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는 땅의 크기로 차이가 났다. 부자는 끝없이 펼쳐진 마을 앞의 모든 농지가 자기들의 농토였다. 중세 시대 영주처럼 성을 쌓아 놓고 임금처럼 군림하지는 않았지만, 그 마을의 부자와 척을 져서는 살아갈 수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그 부의 원천을 보면 노력해서 얻었다기보다는 조상 대대로 물려 오던 문전옥답이었던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농지가 나라에서 하사받은 농토일 수도 있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사들인 것일 수도 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부자의 땅을 지나면서도 부자가 그리 무서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이웃에 살고 그들이 먹는 새끼 밥상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구두를 신고 다닐 때 서민들은 흰 고무신이나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고 하면 그 차이를 짐작할 수 있지만 사실 없이 살아도 입성이 좋아야 한다면서 옷은 잘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런 옷 입는 것으로 부자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어떤가? 당장 차부터 벤츠, BMW, 테슬라 전기차, 포르쉐 등의 고급 승용차가 내 차 주위를 포위하거나 주차장의 눈에 띄는 외제 차를 보면 왠지 위화감이 먼저 든다. 젊은 사람들이 몰고 다니는 고급 승용차를 볼 때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다. 저들은 부모에게서 얼마나 부를 물려받았길래 밀리언 짜리 아파트를 척척 사고 고급 승용차를 끌고 다닐까? 특별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여자친구를 데리고 다니면서 식당 등만 순례하는 것 같은데 하는 느낌 말이다.

교복을 입던 시대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복을 입던 시절에도 부자들은 양복점에서 맞춰 입고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형이 입던 것을 물려 입거나 기성복을 사 입었다. 신발도 같은 검정 운동화나 단화를 신어도 메이커가 있는 신발이냐 아니냐고 구분되기도 했다.

요즘엔 핸드폰도 삼성이 아닌 아이폰을 써야 따돌림을 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핸드폰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하는데 핸드폰을 가졌어도 아이폰을 갖지 않아 차별당하고 불행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삼성폰을 국내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소위 벤또라고 불리던 도시락을 싸오던 시기에도 도시락을 못 싸와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아이들이 있었다. 보온 도시락통에 국물을 싸 왔는데 뜨거워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커피가 뜨거웠던 산행 중에 점심시간 나도 저 브랜드 사서 음식을 싸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파서 그냥 배를 채우는 시대에서 배를 재우되 무엇으로 배를 채우냐고 변했다고 해야 할까?







옷도 추위를 피하려 입는 것이 아닌 좀 더 가볍고 좀 더 땀을 흘리지 않게 통풍이 되면서도 비가 오면 방수 기능도 있는 그런 옷을 원한다. 물론 이런 특수 기능은 천연 소재로 만들기는 힘들다. 과거 조선 시대만 해도 비단이 가장 좋은 옷감이었다. 그러다가 순 모로 양복을 만들과 베르도라는 천으로 옷을 만들고 동물 가죽으로 만든 모피 옷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가 전 국민이 교복처럼 입게 되는 오리털 파카는 추위를 이겨 낼 수 있는 신개념이었다. 그러던 것이 캐나다 구스 잠바 하나에 천 불이 넘는 그런 고급 브랜드가 많은 사람이 입는 브랜드가 되어 가고 있다.

브랜드는 모르겠고 검정 고무신 대신 운동화를 나도 신어 봤으면 하고 바라던 시대와는 구분되는 현실이다. 운동화라고 다 같은 운동화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겨울엔 고무신에 털을 댄 털신과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시대에 내 검정 고무신보다 상갓집에서 얻어 온 아버지의 흰 고무신이 더 좋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보이는 부의 시대에서 현대에는 보이지 않는 상상하기 힘든 부를 가진 부자들이 여기저기 깔아 놓은 덫처럼 우리가 사고 먹고 입고 잠자는 집에서 부자들에게 흘러가는 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절망하게 된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게 되면 그 분노의 크기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당장 잠잘 곳이 없어 길거리로 쫓겨나는 상황에 처 한 사람들이 많다. 일을 할 때는 생활에 문제가 없다가 직장을 잃으면 몰려오는 공포는 모든 게 돈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걸 더욱 크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 시장을 볼 때 쉽게 식재료를 들지 못하고 들었다 놓아기를 해야 한다.

최근 한국의 대통령이 대파 한 단에 875원밖에 안 된다며 아주 적정한 가격이라고 했던 말에서 이승만이 시장에 가면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미리 가격을 조정해 놓았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지금의 대통령이 존경하는 대통령이 이승만이고 박정희라고 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대파 한 단에 875원 했던 것은 그날만 세일을 했던 것이라고 하니 위정자의 눈을 가리고 그것에 맞장구치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있는 한 서민을 위한 정치는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도 밀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밀가루가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고 모든 식료품 가격이 오르는데 당신이 보상받는 밀가루의 가격이 소비자 판매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냐고 하니 5%에서 7% 정도 된다고 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즉 정말 보상을 받아야 하는 농부들은 오히려 반도 안 되는 부분을 차지 하고 대부분 이익을 중간 유통상과 회사들이 이익을 본다는 이야기다.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물가 폭등에 힘들고 농부는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이상한 경제구조이다.

캐나다의 부의 불평등 문제는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 캐나다 정부에 조언을 해주는 비당파적적 기관인 의회 예산담당관실은 캐나다에서 가장 부유한 가구들이 보유한 부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이 새로운 추정치는 캐나다의 1퍼센트가 실제로 총부의 규모에서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통계의 반대 측면에서, 이는 하위 80퍼센트의 인구가 보유한 부의 비중이 과대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나다의 슈퍼 부자들에 대한 새로운 추정치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설문조사의 새로운 모델은 더 많은 부를 포착하고 놀라움을 자아낸다. 그것은 대부분 최상위 부자에게 속한다. 원래 금융보단 공공 이용 마이크로 데이터 파일은 그 분석을 알아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불행하게도, 슈퍼 부자들은 설문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많은 상위 자산을 할당하지 않은 채로 남겨졌다. 그것은 그들이 그것을 추정하기 위해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로운 모델은 높은 순 가치를 지닌 가족 데이터베이스이고, 그것은 부의 최상위 부분을 더 잘 포착한다. 국민 대차 대조표 계정으로부터 데이터를 끌어내고, 그것이 할당되도록 돕는다. 그 결과, 상위 1%의 부의 분배율은 이전 모델에 비해 12% 포인트나 상승한다. 이 재할당을 하는 국가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캐나다의 수퍼리치 가정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재산이 있다.

새로운 모델은 캐나다의 슈퍼 부자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상위 1%의 가구는 이전에는 캐나다에서 13.7%의 부를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새로운 설문조사 모델에 따르면, 그 숫자는 전체 부의 25.6%로 증가한다. 상위 0.01% 만으로도 추정 점유율이 0.4%에서 5.6%로 급증했다.

캐나다 전역에 있는 대부분의 국민은 실제로 하위 80% 가구에 속한다. 중위 40%의 가구는 1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사이의 순자산을 가지고 있다. 10만 달러 미만이라면, 당신의 가구 순자산은 하위 40% 가구에 속한다. 100만 달러 주택에 대한 계약금 5%를 지불하기 위해 당신의 현금을 모두 사용했다면? 당신은 하위 40%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유한 가구의 부의 비중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대다수 캐나다인이 가진 부의 비중이 엄청나게 과대평가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은행의 표현대로라면, 캐나다 국민 대부분은 생각보다 가난하다.

그렇다면 선거를 통해 이러한 부의 편중과 주택 문제, 식품의 가격급등 문제, 평범한 구인 광고에 수백 명이 몰리는 이상 현상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참견할 수 없다고. 하지만 국민이 모두 참여하여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면 점차 개선될 여지는 있다. 최근 캐나다의 주택 문제는 심각하다. 아주 작은 오두막이나 화재로 쓸 수 없는 하우스도 1밀리언이 넘는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크레인이 앞다투어 고층 아파트를 짓고 있지만 그것이 서민들이 감히 욕심을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안다.

점점 사라지는 저층아파트와 도시 개발로 인해 서민들은 주거 환경의 최악을 경험하고 있다. 이자가 오르고 주택 가격이 상승하니 투자로 몇십 채씩 사놓은 부자들이 렌트비를 계속 올린다. 그래서 현재 밴쿠버의 렌트비가 부동산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밴쿠버에 그렇게 좋은 직장이 많나? 직장이 많을 리 없다. 각종 규제로 인해 공장이 들어서지 않는 지역이어서 관광과 이민자들과 유학생들에 의해 밴쿠버 경제가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소득층은 렌트비 상승으로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자녀들과 정부에서 나오는 정해진 연금으로 치솟는 주택 가격과 물가고에 신음하는 저소득층에겐 지옥같은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는, 지상 천국이다. 부자들만을 위한 나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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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어도.

인터넷은 커녕 전기도 없는 깊은 산속
읽는 것도 대화도 드라마 보는 것도 게임도
손 전화로 하던 이는
뭐할지 몰랐다.

추위에 떨지 않으려면
장작을 하고
배곯지 않으려면 열매 따고 사냥해야 하는데
손 전화로 주문해도 오지 않는 음식처럼
버림받은 고서처럼.
 





세상이 바뀌어도.

인터넷은 커녕 전기도 없는 깊은 산속
읽는 것도 대화도 드라마 보는 것도 게임도
손 전화로 하던 이는
뭐할지 몰랐다.

추위에 떨지 않으려면
장작을 하고
배곯지 않으려면 열매 따고 사냥해야 하는데
손 전화로 주문해도 오지 않는 음식처럼
버림받은 고서처럼.
 







#작가의 변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부자들만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일한만큼 보상을 받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다.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의 보상과 땀 흘린 만큼의 아늑한 보금자리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환경인 거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부자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기업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노동자도 기업주도 다 함께 잘사는 국가를 만드는 거다. 정글의 법칙처럼 처절한 경제전쟁으로 늑대들처럼 서로 먹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는 그런 동물의 왕국같은 나라는 더욱 아니다.

농사를 짓던 시골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는 땅의 크기로 차이가 났다. 부자는 끝없이 펼쳐진 마을 앞의 모든 농지가 자기들의 농토였다. 중세 시대 영주처럼 성을 쌓아 놓고 임금처럼 군림하지는 않았지만, 그 마을의 부자와 척을 져서는 살아갈 수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그 부의 원천을 보면 노력해서 얻었다기보다는 조상 대대로 물려 오던 문전옥답이었던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농지가 나라에서 하사받은 농토일 수도 있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사들인 것일 수도 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부자의 땅을 지나면서도 부자가 그리 무서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이웃에 살고 그들이 먹는 새끼 밥상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구두를 신고 다닐 때 서민들은 흰 고무신이나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고 하면 그 차이를 짐작할 수 있지만 사실 없이 살아도 입성이 좋아야 한다면서 옷은 잘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런 옷 입는 것으로 부자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어떤가? 당장 차부터 벤츠, BMW, 테슬라 전기차, 포르쉐 등의 고급 승용차가 내 차 주위를 포위하거나 주차장의 눈에 띄는 외제 차를 보면 왠지 위화감이 먼저 든다. 젊은 사람들이 몰고 다니는 고급 승용차를 볼 때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다. 저들은 부모에게서 얼마나 부를 물려받았길래 밀리언 짜리 아파트를 척척 사고 고급 승용차를 끌고 다닐까? 특별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여자친구를 데리고 다니면서 식당 등만 순례하는 것 같은데 하는 느낌 말이다.

교복을 입던 시대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복을 입던 시절에도 부자들은 양복점에서 맞춰 입고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형이 입던 것을 물려 입거나 기성복을 사 입었다. 신발도 같은 검정 운동화나 단화를 신어도 메이커가 있는 신발이냐 아니냐고 구분되기도 했다.

요즘엔 핸드폰도 삼성이 아닌 아이폰을 써야 따돌림을 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핸드폰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하는데 핸드폰을 가졌어도 아이폰을 갖지 않아 차별당하고 불행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삼성폰을 국내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소위 벤또라고 불리던 도시락을 싸오던 시기에도 도시락을 못 싸와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아이들이 있었다. 보온 도시락통에 국물을 싸 왔는데 뜨거워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커피가 뜨거웠던 산행 중에 점심시간 나도 저 브랜드 사서 음식을 싸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파서 그냥 배를 채우는 시대에서 배를 재우되 무엇으로 배를 채우냐고 변했다고 해야 할까?







옷도 추위를 피하려 입는 것이 아닌 좀 더 가볍고 좀 더 땀을 흘리지 않게 통풍이 되면서도 비가 오면 방수 기능도 있는 그런 옷을 원한다. 물론 이런 특수 기능은 천연 소재로 만들기는 힘들다. 과거 조선 시대만 해도 비단이 가장 좋은 옷감이었다. 그러다가 순 모로 양복을 만들과 베르도라는 천으로 옷을 만들고 동물 가죽으로 만든 모피 옷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가 전 국민이 교복처럼 입게 되는 오리털 파카는 추위를 이겨 낼 수 있는 신개념이었다. 그러던 것이 캐나다 구스 잠바 하나에 천 불이 넘는 그런 고급 브랜드가 많은 사람이 입는 브랜드가 되어 가고 있다.

브랜드는 모르겠고 검정 고무신 대신 운동화를 나도 신어 봤으면 하고 바라던 시대와는 구분되는 현실이다. 운동화라고 다 같은 운동화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겨울엔 고무신에 털을 댄 털신과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시대에 내 검정 고무신보다 상갓집에서 얻어 온 아버지의 흰 고무신이 더 좋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보이는 부의 시대에서 현대에는 보이지 않는 상상하기 힘든 부를 가진 부자들이 여기저기 깔아 놓은 덫처럼 우리가 사고 먹고 입고 잠자는 집에서 부자들에게 흘러가는 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절망하게 된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게 되면 그 분노의 크기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당장 잠잘 곳이 없어 길거리로 쫓겨나는 상황에 처 한 사람들이 많다. 일을 할 때는 생활에 문제가 없다가 직장을 잃으면 몰려오는 공포는 모든 게 돈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걸 더욱 크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 시장을 볼 때 쉽게 식재료를 들지 못하고 들었다 놓아기를 해야 한다.

최근 한국의 대통령이 대파 한 단에 875원밖에 안 된다며 아주 적정한 가격이라고 했던 말에서 이승만이 시장에 가면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미리 가격을 조정해 놓았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지금의 대통령이 존경하는 대통령이 이승만이고 박정희라고 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대파 한 단에 875원 했던 것은 그날만 세일을 했던 것이라고 하니 위정자의 눈을 가리고 그것에 맞장구치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있는 한 서민을 위한 정치는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도 밀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밀가루가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고 모든 식료품 가격이 오르는데 당신이 보상받는 밀가루의 가격이 소비자 판매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냐고 하니 5%에서 7% 정도 된다고 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즉 정말 보상을 받아야 하는 농부들은 오히려 반도 안 되는 부분을 차지 하고 대부분 이익을 중간 유통상과 회사들이 이익을 본다는 이야기다.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물가 폭등에 힘들고 농부는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이상한 경제구조이다.

캐나다의 부의 불평등 문제는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 캐나다 정부에 조언을 해주는 비당파적적 기관인 의회 예산담당관실은 캐나다에서 가장 부유한 가구들이 보유한 부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이 새로운 추정치는 캐나다의 1퍼센트가 실제로 총부의 규모에서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통계의 반대 측면에서, 이는 하위 80퍼센트의 인구가 보유한 부의 비중이 과대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나다의 슈퍼 부자들에 대한 새로운 추정치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설문조사의 새로운 모델은 더 많은 부를 포착하고 놀라움을 자아낸다. 그것은 대부분 최상위 부자에게 속한다. 원래 금융보단 공공 이용 마이크로 데이터 파일은 그 분석을 알아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불행하게도, 슈퍼 부자들은 설문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많은 상위 자산을 할당하지 않은 채로 남겨졌다. 그것은 그들이 그것을 추정하기 위해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로운 모델은 높은 순 가치를 지닌 가족 데이터베이스이고, 그것은 부의 최상위 부분을 더 잘 포착한다. 국민 대차 대조표 계정으로부터 데이터를 끌어내고, 그것이 할당되도록 돕는다. 그 결과, 상위 1%의 부의 분배율은 이전 모델에 비해 12% 포인트나 상승한다. 이 재할당을 하는 국가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캐나다의 수퍼리치 가정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재산이 있다.

새로운 모델은 캐나다의 슈퍼 부자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상위 1%의 가구는 이전에는 캐나다에서 13.7%의 부를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새로운 설문조사 모델에 따르면, 그 숫자는 전체 부의 25.6%로 증가한다. 상위 0.01% 만으로도 추정 점유율이 0.4%에서 5.6%로 급증했다.

캐나다 전역에 있는 대부분의 국민은 실제로 하위 80% 가구에 속한다. 중위 40%의 가구는 1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사이의 순자산을 가지고 있다. 10만 달러 미만이라면, 당신의 가구 순자산은 하위 40% 가구에 속한다. 100만 달러 주택에 대한 계약금 5%를 지불하기 위해 당신의 현금을 모두 사용했다면? 당신은 하위 40%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유한 가구의 부의 비중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대다수 캐나다인이 가진 부의 비중이 엄청나게 과대평가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은행의 표현대로라면, 캐나다 국민 대부분은 생각보다 가난하다.

그렇다면 선거를 통해 이러한 부의 편중과 주택 문제, 식품의 가격급등 문제, 평범한 구인 광고에 수백 명이 몰리는 이상 현상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참견할 수 없다고. 하지만 국민이 모두 참여하여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면 점차 개선될 여지는 있다. 최근 캐나다의 주택 문제는 심각하다. 아주 작은 오두막이나 화재로 쓸 수 없는 하우스도 1밀리언이 넘는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크레인이 앞다투어 고층 아파트를 짓고 있지만 그것이 서민들이 감히 욕심을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안다.

점점 사라지는 저층아파트와 도시 개발로 인해 서민들은 주거 환경의 최악을 경험하고 있다. 이자가 오르고 주택 가격이 상승하니 투자로 몇십 채씩 사놓은 부자들이 렌트비를 계속 올린다. 그래서 현재 밴쿠버의 렌트비가 부동산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밴쿠버에 그렇게 좋은 직장이 많나? 직장이 많을 리 없다. 각종 규제로 인해 공장이 들어서지 않는 지역이어서 관광과 이민자들과 유학생들에 의해 밴쿠버 경제가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소득층은 렌트비 상승으로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자녀들과 정부에서 나오는 정해진 연금으로 치솟는 주택 가격과 물가고에 신음하는 저소득층에겐 지옥같은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는, 지상 천국이다. 부자들만을 위한 나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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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부자들만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일한만큼 보상을 받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다.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의 보상과 땀 흘린 만큼의 아늑한 보금자리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환경인 거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부자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기업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노동자도 기업주도 다 함께 잘사는 국가를 만드는 거다. 정글의 법칙처럼 처절한 경제전쟁으로 늑대들처럼 서로 먹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는 그런 동물의 왕국같은 나라는 더욱 아니다.

농사를 짓던 시골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는 땅의 크기로 차이가 났다. 부자는 끝없이 펼쳐진 마을 앞의 모든 농지가 자기들의 농토였다. 중세 시대 영주처럼 성을 쌓아 놓고 임금처럼 군림하지는 않았지만, 그 마을의 부자와 척을 져서는 살아갈 수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그 부의 원천을 보면 노력해서 얻었다기보다는 조상 대대로 물려 오던 문전옥답이었던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농지가 나라에서 하사받은 농토일 수도 있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사들인 것일 수도 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부자의 땅을 지나면서도 부자가 그리 무서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이웃에 살고 그들이 먹는 새끼 밥상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구두를 신고 다닐 때 서민들은 흰 고무신이나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고 하면 그 차이를 짐작할 수 있지만 사실 없이 살아도 입성이 좋아야 한다면서 옷은 잘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런 옷 입는 것으로 부자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어떤가? 당장 차부터 벤츠, BMW, 테슬라 전기차, 포르쉐 등의 고급 승용차가 내 차 주위를 포위하거나 주차장의 눈에 띄는 외제 차를 보면 왠지 위화감이 먼저 든다. 젊은 사람들이 몰고 다니는 고급 승용차를 볼 때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다. 저들은 부모에게서 얼마나 부를 물려받았길래 밀리언 짜리 아파트를 척척 사고 고급 승용차를 끌고 다닐까? 특별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여자친구를 데리고 다니면서 식당 등만 순례하는 것 같은데 하는 느낌 말이다.

교복을 입던 시대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복을 입던 시절에도 부자들은 양복점에서 맞춰 입고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형이 입던 것을 물려 입거나 기성복을 사 입었다. 신발도 같은 검정 운동화나 단화를 신어도 메이커가 있는 신발이냐 아니냐고 구분되기도 했다.

요즘엔 핸드폰도 삼성이 아닌 아이폰을 써야 따돌림을 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핸드폰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하는데 핸드폰을 가졌어도 아이폰을 갖지 않아 차별당하고 불행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삼성폰을 국내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소위 벤또라고 불리던 도시락을 싸오던 시기에도 도시락을 못 싸와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아이들이 있었다. 보온 도시락통에 국물을 싸 왔는데 뜨거워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커피가 뜨거웠던 산행 중에 점심시간 나도 저 브랜드 사서 음식을 싸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파서 그냥 배를 채우는 시대에서 배를 재우되 무엇으로 배를 채우냐고 변했다고 해야 할까?





세상이 바뀌어도.

인터넷은 커녕 전기도 없는 깊은 산속
읽는 것도 대화도 드라마 보는 것도 게임도
손 전화로 하던 이는
뭐할지 몰랐다.

추위에 떨지 않으려면
장작을 하고
배곯지 않으려면 열매 따고 사냥해야 하는데
손 전화로 주문해도 오지 않는 음식처럼
버림받은 고서처럼.
 







#작가의 변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부자들만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일한만큼 보상을 받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다.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의 보상과 땀 흘린 만큼의 아늑한 보금자리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환경인 거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부자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기업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노동자도 기업주도 다 함께 잘사는 국가를 만드는 거다. 정글의 법칙처럼 처절한 경제전쟁으로 늑대들처럼 서로 먹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는 그런 동물의 왕국같은 나라는 더욱 아니다.

농사를 짓던 시골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는 땅의 크기로 차이가 났다. 부자는 끝없이 펼쳐진 마을 앞의 모든 농지가 자기들의 농토였다. 중세 시대 영주처럼 성을 쌓아 놓고 임금처럼 군림하지는 않았지만, 그 마을의 부자와 척을 져서는 살아갈 수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그 부의 원천을 보면 노력해서 얻었다기보다는 조상 대대로 물려 오던 문전옥답이었던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농지가 나라에서 하사받은 농토일 수도 있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사들인 것일 수도 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부자의 땅을 지나면서도 부자가 그리 무서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이웃에 살고 그들이 먹는 새끼 밥상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구두를 신고 다닐 때 서민들은 흰 고무신이나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고 하면 그 차이를 짐작할 수 있지만 사실 없이 살아도 입성이 좋아야 한다면서 옷은 잘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런 옷 입는 것으로 부자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어떤가? 당장 차부터 벤츠, BMW, 테슬라 전기차, 포르쉐 등의 고급 승용차가 내 차 주위를 포위하거나 주차장의 눈에 띄는 외제 차를 보면 왠지 위화감이 먼저 든다. 젊은 사람들이 몰고 다니는 고급 승용차를 볼 때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다. 저들은 부모에게서 얼마나 부를 물려받았길래 밀리언 짜리 아파트를 척척 사고 고급 승용차를 끌고 다닐까? 특별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여자친구를 데리고 다니면서 식당 등만 순례하는 것 같은데 하는 느낌 말이다.

교복을 입던 시대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복을 입던 시절에도 부자들은 양복점에서 맞춰 입고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형이 입던 것을 물려 입거나 기성복을 사 입었다. 신발도 같은 검정 운동화나 단화를 신어도 메이커가 있는 신발이냐 아니냐고 구분되기도 했다.

요즘엔 핸드폰도 삼성이 아닌 아이폰을 써야 따돌림을 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핸드폰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하는데 핸드폰을 가졌어도 아이폰을 갖지 않아 차별당하고 불행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삼성폰을 국내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소위 벤또라고 불리던 도시락을 싸오던 시기에도 도시락을 못 싸와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아이들이 있었다. 보온 도시락통에 국물을 싸 왔는데 뜨거워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커피가 뜨거웠던 산행 중에 점심시간 나도 저 브랜드 사서 음식을 싸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파서 그냥 배를 채우는 시대에서 배를 재우되 무엇으로 배를 채우냐고 변했다고 해야 할까?







옷도 추위를 피하려 입는 것이 아닌 좀 더 가볍고 좀 더 땀을 흘리지 않게 통풍이 되면서도 비가 오면 방수 기능도 있는 그런 옷을 원한다. 물론 이런 특수 기능은 천연 소재로 만들기는 힘들다. 과거 조선 시대만 해도 비단이 가장 좋은 옷감이었다. 그러다가 순 모로 양복을 만들과 베르도라는 천으로 옷을 만들고 동물 가죽으로 만든 모피 옷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가 전 국민이 교복처럼 입게 되는 오리털 파카는 추위를 이겨 낼 수 있는 신개념이었다. 그러던 것이 캐나다 구스 잠바 하나에 천 불이 넘는 그런 고급 브랜드가 많은 사람이 입는 브랜드가 되어 가고 있다.

브랜드는 모르겠고 검정 고무신 대신 운동화를 나도 신어 봤으면 하고 바라던 시대와는 구분되는 현실이다. 운동화라고 다 같은 운동화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겨울엔 고무신에 털을 댄 털신과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시대에 내 검정 고무신보다 상갓집에서 얻어 온 아버지의 흰 고무신이 더 좋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보이는 부의 시대에서 현대에는 보이지 않는 상상하기 힘든 부를 가진 부자들이 여기저기 깔아 놓은 덫처럼 우리가 사고 먹고 입고 잠자는 집에서 부자들에게 흘러가는 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절망하게 된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게 되면 그 분노의 크기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당장 잠잘 곳이 없어 길거리로 쫓겨나는 상황에 처 한 사람들이 많다. 일을 할 때는 생활에 문제가 없다가 직장을 잃으면 몰려오는 공포는 모든 게 돈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걸 더욱 크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 시장을 볼 때 쉽게 식재료를 들지 못하고 들었다 놓아기를 해야 한다.

최근 한국의 대통령이 대파 한 단에 875원밖에 안 된다며 아주 적정한 가격이라고 했던 말에서 이승만이 시장에 가면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미리 가격을 조정해 놓았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지금의 대통령이 존경하는 대통령이 이승만이고 박정희라고 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대파 한 단에 875원 했던 것은 그날만 세일을 했던 것이라고 하니 위정자의 눈을 가리고 그것에 맞장구치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있는 한 서민을 위한 정치는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도 밀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밀가루가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고 모든 식료품 가격이 오르는데 당신이 보상받는 밀가루의 가격이 소비자 판매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냐고 하니 5%에서 7% 정도 된다고 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즉 정말 보상을 받아야 하는 농부들은 오히려 반도 안 되는 부분을 차지 하고 대부분 이익을 중간 유통상과 회사들이 이익을 본다는 이야기다.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물가 폭등에 힘들고 농부는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이상한 경제구조이다.

캐나다의 부의 불평등 문제는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 캐나다 정부에 조언을 해주는 비당파적적 기관인 의회 예산담당관실은 캐나다에서 가장 부유한 가구들이 보유한 부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이 새로운 추정치는 캐나다의 1퍼센트가 실제로 총부의 규모에서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통계의 반대 측면에서, 이는 하위 80퍼센트의 인구가 보유한 부의 비중이 과대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나다의 슈퍼 부자들에 대한 새로운 추정치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설문조사의 새로운 모델은 더 많은 부를 포착하고 놀라움을 자아낸다. 그것은 대부분 최상위 부자에게 속한다. 원래 금융보단 공공 이용 마이크로 데이터 파일은 그 분석을 알아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불행하게도, 슈퍼 부자들은 설문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많은 상위 자산을 할당하지 않은 채로 남겨졌다. 그것은 그들이 그것을 추정하기 위해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로운 모델은 높은 순 가치를 지닌 가족 데이터베이스이고, 그것은 부의 최상위 부분을 더 잘 포착한다. 국민 대차 대조표 계정으로부터 데이터를 끌어내고, 그것이 할당되도록 돕는다. 그 결과, 상위 1%의 부의 분배율은 이전 모델에 비해 12% 포인트나 상승한다. 이 재할당을 하는 국가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캐나다의 수퍼리치 가정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재산이 있다.

새로운 모델은 캐나다의 슈퍼 부자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상위 1%의 가구는 이전에는 캐나다에서 13.7%의 부를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새로운 설문조사 모델에 따르면, 그 숫자는 전체 부의 25.6%로 증가한다. 상위 0.01% 만으로도 추정 점유율이 0.4%에서 5.6%로 급증했다.

캐나다 전역에 있는 대부분의 국민은 실제로 하위 80% 가구에 속한다. 중위 40%의 가구는 1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사이의 순자산을 가지고 있다. 10만 달러 미만이라면, 당신의 가구 순자산은 하위 40% 가구에 속한다. 100만 달러 주택에 대한 계약금 5%를 지불하기 위해 당신의 현금을 모두 사용했다면? 당신은 하위 40%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유한 가구의 부의 비중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대다수 캐나다인이 가진 부의 비중이 엄청나게 과대평가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은행의 표현대로라면, 캐나다 국민 대부분은 생각보다 가난하다.

그렇다면 선거를 통해 이러한 부의 편중과 주택 문제, 식품의 가격급등 문제, 평범한 구인 광고에 수백 명이 몰리는 이상 현상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참견할 수 없다고. 하지만 국민이 모두 참여하여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면 점차 개선될 여지는 있다. 최근 캐나다의 주택 문제는 심각하다. 아주 작은 오두막이나 화재로 쓸 수 없는 하우스도 1밀리언이 넘는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크레인이 앞다투어 고층 아파트를 짓고 있지만 그것이 서민들이 감히 욕심을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안다.

점점 사라지는 저층아파트와 도시 개발로 인해 서민들은 주거 환경의 최악을 경험하고 있다. 이자가 오르고 주택 가격이 상승하니 투자로 몇십 채씩 사놓은 부자들이 렌트비를 계속 올린다. 그래서 현재 밴쿠버의 렌트비가 부동산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밴쿠버에 그렇게 좋은 직장이 많나? 직장이 많을 리 없다. 각종 규제로 인해 공장이 들어서지 않는 지역이어서 관광과 이민자들과 유학생들에 의해 밴쿠버 경제가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소득층은 렌트비 상승으로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자녀들과 정부에서 나오는 정해진 연금으로 치솟는 주택 가격과 물가고에 신음하는 저소득층에겐 지옥같은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는, 지상 천국이다. 부자들만을 위한 나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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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도 추위를 피하려 입는 것이 아닌 좀 더 가볍고 좀 더 땀을 흘리지 않게 통풍이 되면서도 비가 오면 방수 기능도 있는 그런 옷을 원한다. 물론 이런 특수 기능은 천연 소재로 만들기는 힘들다. 과거 조선 시대만 해도 비단이 가장 좋은 옷감이었다. 그러다가 순 모로 양복을 만들과 베르도라는 천으로 옷을 만들고 동물 가죽으로 만든 모피 옷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가 전 국민이 교복처럼 입게 되는 오리털 파카는 추위를 이겨 낼 수 있는 신개념이었다. 그러던 것이 캐나다 구스 잠바 하나에 천 불이 넘는 그런 고급 브랜드가 많은 사람이 입는 브랜드가 되어 가고 있다.

브랜드는 모르겠고 검정 고무신 대신 운동화를 나도 신어 봤으면 하고 바라던 시대와는 구분되는 현실이다. 운동화라고 다 같은 운동화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겨울엔 고무신에 털을 댄 털신과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시대에 내 검정 고무신보다 상갓집에서 얻어 온 아버지의 흰 고무신이 더 좋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보이는 부의 시대에서 현대에는 보이지 않는 상상하기 힘든 부를 가진 부자들이 여기저기 깔아 놓은 덫처럼 우리가 사고 먹고 입고 잠자는 집에서 부자들에게 흘러가는 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절망하게 된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게 되면 그 분노의 크기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당장 잠잘 곳이 없어 길거리로 쫓겨나는 상황에 처 한 사람들이 많다. 일을 할 때는 생활에 문제가 없다가 직장을 잃으면 몰려오는 공포는 모든 게 돈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걸 더욱 크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 시장을 볼 때 쉽게 식재료를 들지 못하고 들었다 놓아기를 해야 한다.

최근 한국의 대통령이 대파 한 단에 875원밖에 안 된다며 아주 적정한 가격이라고 했던 말에서 이승만이 시장에 가면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미리 가격을 조정해 놓았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지금의 대통령이 존경하는 대통령이 이승만이고 박정희라고 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대파 한 단에 875원 했던 것은 그날만 세일을 했던 것이라고 하니 위정자의 눈을 가리고 그것에 맞장구치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있는 한 서민을 위한 정치는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도 밀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밀가루가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고 모든 식료품 가격이 오르는데 당신이 보상받는 밀가루의 가격이 소비자 판매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냐고 하니 5%에서 7% 정도 된다고 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즉 정말 보상을 받아야 하는 농부들은 오히려 반도 안 되는 부분을 차지 하고 대부분 이익을 중간 유통상과 회사들이 이익을 본다는 이야기다.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물가 폭등에 힘들고 농부는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이상한 경제구조이다.

캐나다의 부의 불평등 문제는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 캐나다 정부에 조언을 해주는 비당파적적 기관인 의회 예산담당관실은 캐나다에서 가장 부유한 가구들이 보유한 부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이 새로운 추정치는 캐나다의 1퍼센트가 실제로 총부의 규모에서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통계의 반대 측면에서, 이는 하위 80퍼센트의 인구가 보유한 부의 비중이 과대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나다의 슈퍼 부자들에 대한 새로운 추정치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설문조사의 새로운 모델은 더 많은 부를 포착하고 놀라움을 자아낸다. 그것은 대부분 최상위 부자에게 속한다. 원래 금융보단 공공 이용 마이크로 데이터 파일은 그 분석을 알아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불행하게도, 슈퍼 부자들은 설문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많은 상위 자산을 할당하지 않은 채로 남겨졌다. 그것은 그들이 그것을 추정하기 위해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로운 모델은 높은 순 가치를 지닌 가족 데이터베이스이고, 그것은 부의 최상위 부분을 더 잘 포착한다. 국민 대차 대조표 계정으로부터 데이터를 끌어내고, 그것이 할당되도록 돕는다. 그 결과, 상위 1%의 부의 분배율은 이전 모델에 비해 12% 포인트나 상승한다. 이 재할당을 하는 국가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캐나다의 수퍼리치 가정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재산이 있다.

새로운 모델은 캐나다의 슈퍼 부자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상위 1%의 가구는 이전에는 캐나다에서 13.7%의 부를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새로운 설문조사 모델에 따르면, 그 숫자는 전체 부의 25.6%로 증가한다. 상위 0.01% 만으로도 추정 점유율이 0.4%에서 5.6%로 급증했다.

캐나다 전역에 있는 대부분의 국민은 실제로 하위 80% 가구에 속한다. 중위 40%의 가구는 1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사이의 순자산을 가지고 있다. 10만 달러 미만이라면, 당신의 가구 순자산은 하위 40% 가구에 속한다. 100만 달러 주택에 대한 계약금 5%를 지불하기 위해 당신의 현금을 모두 사용했다면? 당신은 하위 40%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유한 가구의 부의 비중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대다수 캐나다인이 가진 부의 비중이 엄청나게 과대평가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은행의 표현대로라면, 캐나다 국민 대부분은 생각보다 가난하다.

그렇다면 선거를 통해 이러한 부의 편중과 주택 문제, 식품의 가격급등 문제, 평범한 구인 광고에 수백 명이 몰리는 이상 현상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참견할 수 없다고. 하지만 국민이 모두 참여하여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면 점차 개선될 여지는 있다. 최근 캐나다의 주택 문제는 심각하다. 아주 작은 오두막이나 화재로 쓸 수 없는 하우스도 1밀리언이 넘는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크레인이 앞다투어 고층 아파트를 짓고 있지만 그것이 서민들이 감히 욕심을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안다.

점점 사라지는 저층아파트와 도시 개발로 인해 서민들은 주거 환경의 최악을 경험하고 있다. 이자가 오르고 주택 가격이 상승하니 투자로 몇십 채씩 사놓은 부자들이 렌트비를 계속 올린다. 그래서 현재 밴쿠버의 렌트비가 부동산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밴쿠버에 그렇게 좋은 직장이 많나? 직장이 많을 리 없다. 각종 규제로 인해 공장이 들어서지 않는 지역이어서 관광과 이민자들과 유학생들에 의해 밴쿠버 경제가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소득층은 렌트비 상승으로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자녀들과 정부에서 나오는 정해진 연금으로 치솟는 주택 가격과 물가고에 신음하는 저소득층에겐 지옥같은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는, 지상 천국이다. 부자들만을 위한 나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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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어도.

인터넷은 커녕 전기도 없는 깊은 산속
읽는 것도 대화도 드라마 보는 것도 게임도
손 전화로 하던 이는
뭐할지 몰랐다.

추위에 떨지 않으려면
장작을 하고
배곯지 않으려면 열매 따고 사냥해야 하는데
손 전화로 주문해도 오지 않는 음식처럼
버림받은 고서처럼.
 







#작가의 변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부자들만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일한만큼 보상을 받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다.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의 보상과 땀 흘린 만큼의 아늑한 보금자리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환경인 거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부자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기업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노동자도 기업주도 다 함께 잘사는 국가를 만드는 거다. 정글의 법칙처럼 처절한 경제전쟁으로 늑대들처럼 서로 먹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는 그런 동물의 왕국같은 나라는 더욱 아니다.

농사를 짓던 시골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는 땅의 크기로 차이가 났다. 부자는 끝없이 펼쳐진 마을 앞의 모든 농지가 자기들의 농토였다. 중세 시대 영주처럼 성을 쌓아 놓고 임금처럼 군림하지는 않았지만, 그 마을의 부자와 척을 져서는 살아갈 수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그 부의 원천을 보면 노력해서 얻었다기보다는 조상 대대로 물려 오던 문전옥답이었던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농지가 나라에서 하사받은 농토일 수도 있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사들인 것일 수도 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부자의 땅을 지나면서도 부자가 그리 무서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이웃에 살고 그들이 먹는 새끼 밥상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구두를 신고 다닐 때 서민들은 흰 고무신이나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고 하면 그 차이를 짐작할 수 있지만 사실 없이 살아도 입성이 좋아야 한다면서 옷은 잘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런 옷 입는 것으로 부자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어떤가? 당장 차부터 벤츠, BMW, 테슬라 전기차, 포르쉐 등의 고급 승용차가 내 차 주위를 포위하거나 주차장의 눈에 띄는 외제 차를 보면 왠지 위화감이 먼저 든다. 젊은 사람들이 몰고 다니는 고급 승용차를 볼 때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다. 저들은 부모에게서 얼마나 부를 물려받았길래 밀리언 짜리 아파트를 척척 사고 고급 승용차를 끌고 다닐까? 특별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여자친구를 데리고 다니면서 식당 등만 순례하는 것 같은데 하는 느낌 말이다.

교복을 입던 시대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복을 입던 시절에도 부자들은 양복점에서 맞춰 입고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형이 입던 것을 물려 입거나 기성복을 사 입었다. 신발도 같은 검정 운동화나 단화를 신어도 메이커가 있는 신발이냐 아니냐고 구분되기도 했다.

요즘엔 핸드폰도 삼성이 아닌 아이폰을 써야 따돌림을 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핸드폰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하는데 핸드폰을 가졌어도 아이폰을 갖지 않아 차별당하고 불행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삼성폰을 국내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소위 벤또라고 불리던 도시락을 싸오던 시기에도 도시락을 못 싸와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아이들이 있었다. 보온 도시락통에 국물을 싸 왔는데 뜨거워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커피가 뜨거웠던 산행 중에 점심시간 나도 저 브랜드 사서 음식을 싸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파서 그냥 배를 채우는 시대에서 배를 재우되 무엇으로 배를 채우냐고 변했다고 해야 할까?







옷도 추위를 피하려 입는 것이 아닌 좀 더 가볍고 좀 더 땀을 흘리지 않게 통풍이 되면서도 비가 오면 방수 기능도 있는 그런 옷을 원한다. 물론 이런 특수 기능은 천연 소재로 만들기는 힘들다. 과거 조선 시대만 해도 비단이 가장 좋은 옷감이었다. 그러다가 순 모로 양복을 만들과 베르도라는 천으로 옷을 만들고 동물 가죽으로 만든 모피 옷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가 전 국민이 교복처럼 입게 되는 오리털 파카는 추위를 이겨 낼 수 있는 신개념이었다. 그러던 것이 캐나다 구스 잠바 하나에 천 불이 넘는 그런 고급 브랜드가 많은 사람이 입는 브랜드가 되어 가고 있다.

브랜드는 모르겠고 검정 고무신 대신 운동화를 나도 신어 봤으면 하고 바라던 시대와는 구분되는 현실이다. 운동화라고 다 같은 운동화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겨울엔 고무신에 털을 댄 털신과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시대에 내 검정 고무신보다 상갓집에서 얻어 온 아버지의 흰 고무신이 더 좋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보이는 부의 시대에서 현대에는 보이지 않는 상상하기 힘든 부를 가진 부자들이 여기저기 깔아 놓은 덫처럼 우리가 사고 먹고 입고 잠자는 집에서 부자들에게 흘러가는 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절망하게 된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게 되면 그 분노의 크기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당장 잠잘 곳이 없어 길거리로 쫓겨나는 상황에 처 한 사람들이 많다. 일을 할 때는 생활에 문제가 없다가 직장을 잃으면 몰려오는 공포는 모든 게 돈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걸 더욱 크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 시장을 볼 때 쉽게 식재료를 들지 못하고 들었다 놓아기를 해야 한다.

최근 한국의 대통령이 대파 한 단에 875원밖에 안 된다며 아주 적정한 가격이라고 했던 말에서 이승만이 시장에 가면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미리 가격을 조정해 놓았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지금의 대통령이 존경하는 대통령이 이승만이고 박정희라고 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대파 한 단에 875원 했던 것은 그날만 세일을 했던 것이라고 하니 위정자의 눈을 가리고 그것에 맞장구치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있는 한 서민을 위한 정치는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도 밀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밀가루가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고 모든 식료품 가격이 오르는데 당신이 보상받는 밀가루의 가격이 소비자 판매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냐고 하니 5%에서 7% 정도 된다고 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즉 정말 보상을 받아야 하는 농부들은 오히려 반도 안 되는 부분을 차지 하고 대부분 이익을 중간 유통상과 회사들이 이익을 본다는 이야기다.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물가 폭등에 힘들고 농부는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이상한 경제구조이다.

캐나다의 부의 불평등 문제는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 캐나다 정부에 조언을 해주는 비당파적적 기관인 의회 예산담당관실은 캐나다에서 가장 부유한 가구들이 보유한 부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이 새로운 추정치는 캐나다의 1퍼센트가 실제로 총부의 규모에서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통계의 반대 측면에서, 이는 하위 80퍼센트의 인구가 보유한 부의 비중이 과대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나다의 슈퍼 부자들에 대한 새로운 추정치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설문조사의 새로운 모델은 더 많은 부를 포착하고 놀라움을 자아낸다. 그것은 대부분 최상위 부자에게 속한다. 원래 금융보단 공공 이용 마이크로 데이터 파일은 그 분석을 알아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불행하게도, 슈퍼 부자들은 설문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많은 상위 자산을 할당하지 않은 채로 남겨졌다. 그것은 그들이 그것을 추정하기 위해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로운 모델은 높은 순 가치를 지닌 가족 데이터베이스이고, 그것은 부의 최상위 부분을 더 잘 포착한다. 국민 대차 대조표 계정으로부터 데이터를 끌어내고, 그것이 할당되도록 돕는다. 그 결과, 상위 1%의 부의 분배율은 이전 모델에 비해 12% 포인트나 상승한다. 이 재할당을 하는 국가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캐나다의 수퍼리치 가정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재산이 있다.

새로운 모델은 캐나다의 슈퍼 부자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상위 1%의 가구는 이전에는 캐나다에서 13.7%의 부를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새로운 설문조사 모델에 따르면, 그 숫자는 전체 부의 25.6%로 증가한다. 상위 0.01% 만으로도 추정 점유율이 0.4%에서 5.6%로 급증했다.

캐나다 전역에 있는 대부분의 국민은 실제로 하위 80% 가구에 속한다. 중위 40%의 가구는 1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사이의 순자산을 가지고 있다. 10만 달러 미만이라면, 당신의 가구 순자산은 하위 40% 가구에 속한다. 100만 달러 주택에 대한 계약금 5%를 지불하기 위해 당신의 현금을 모두 사용했다면? 당신은 하위 40%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유한 가구의 부의 비중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대다수 캐나다인이 가진 부의 비중이 엄청나게 과대평가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은행의 표현대로라면, 캐나다 국민 대부분은 생각보다 가난하다.

그렇다면 선거를 통해 이러한 부의 편중과 주택 문제, 식품의 가격급등 문제, 평범한 구인 광고에 수백 명이 몰리는 이상 현상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참견할 수 없다고. 하지만 국민이 모두 참여하여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면 점차 개선될 여지는 있다. 최근 캐나다의 주택 문제는 심각하다. 아주 작은 오두막이나 화재로 쓸 수 없는 하우스도 1밀리언이 넘는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크레인이 앞다투어 고층 아파트를 짓고 있지만 그것이 서민들이 감히 욕심을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안다.

점점 사라지는 저층아파트와 도시 개발로 인해 서민들은 주거 환경의 최악을 경험하고 있다. 이자가 오르고 주택 가격이 상승하니 투자로 몇십 채씩 사놓은 부자들이 렌트비를 계속 올린다. 그래서 현재 밴쿠버의 렌트비가 부동산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밴쿠버에 그렇게 좋은 직장이 많나? 직장이 많을 리 없다. 각종 규제로 인해 공장이 들어서지 않는 지역이어서 관광과 이민자들과 유학생들에 의해 밴쿠버 경제가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소득층은 렌트비 상승으로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자녀들과 정부에서 나오는 정해진 연금으로 치솟는 주택 가격과 물가고에 신음하는 저소득층에겐 지옥같은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는, 지상 천국이다. 부자들만을 위한 나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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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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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박정희대통령 2024-03-28 13:13:02
영웅박정희대통령 새마을운동 한국과학기술 설립 국방과학기술 설립 최초 굶주린 우유생산 ㆍ의료보험혜택. 자립.자주경제.자주국방

민주화의 영웅이란 자기 고장의 발전을 위하여 말없이 묵묵히 피땀흘려 일하는 인간 상록수들이다 #박정희 #영웅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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